며칠 전, 나의 마흔 번째 생일이었다.
생일날을 요약해 보자면..
1. 내 생일 이틀 전, 둘째 아이가 A형 독감에 걸려 연차를 쓰고 집에서 아이를 돌봤다.(외식 불가)
2. 아침에 셋째가 이불이 오줌을 눴다.
3. 폭설. 첫째 탁구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폭설로 인해 10분 거리를 1시간 30분 걸려 집으로 도착했다. 언덕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나는... 운전 경력 7년 만에 최악의 경험을 했다.
4. 흰머리를 발견했다. (내 생에 3번째 흰머리)
5. 내가 먹고 싶었던 케이크 가게는 휴무일이라서 내 생일 당일에는 케이크도 먹지 못했다.
참... 다산 다난한 마흔 번째 생일이었다.
1. 내 생일 이틀 전, 둘째 아이가 A형 독감에 걸려 연차를 쓰고 집에서 아이를 돌봤다.(외식 불가)
아이가 열이 있었지만 쳐지는 것도 없이 잘 버텨줘서 다행이었다.
입맛이 없어서 걱정했지만 그 와중에 먹고 싶은 음식이 라면이라고 해서 준비하기 수월했다. 그래.. 너도 이럴 때 먹고 싶은 거 먹어야지.
항상 첫째, 셋째 사이에 끼어서 엄마아빠의 관심을 온전히 받기 힘든 위치에 있는 둘째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2. 아침에 셋째가 이불에 오줌을 눴다.
내가 요즘 이불 빨래 못 한 거 어찌 알고.. 적절한 타이밍에 세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네
게다가 엄마가 집에 있는 거 알고 오늘 오줌 눴니?
기저귀 떼고 실수 잘 안 하던 막내였는데
엄마 출근하는 날 그랬으면 앞이 캄캄했을 거야.
오늘 니 덕분에 깨끗한 이불에서 자는구나.
3. 폭설. 첫째 탁구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폭설로 인해 10분 거리를 1시간 30분 걸려 집으로 도착했다. 언덕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나는... 운전 경력 7년 만에 최악의 경험을 했다.
첫째는 언제 눈이 오나 매일 기다렸는데 운동이 끝나자 펑펑 쏟아지던 눈을 보며 엄마 생일이 눈이 온다며 좋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고생스러운 줄 몰랐던 그 순간은 참 행복했다.
언덕 위의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나는 아파트 정문에 길게 늘어선 차를 보며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불과 집까지 800미터를 앞두고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제설작업은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다른 차들이 뒤로 밀려 언덕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니 너무 무서웠다.
앞에 차가 뒤로 밀릴까 봐 그것도 무서웠지만, 내 차가 뒤로 밀려 뒤에 있는 차를 박게 될까 봐 그것도 너무 무서웠다.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움직이려고 하니, 앞 차와 내 차 차이의 간격에 눈이 많이 쌓여 앞으로 이동해야 할 때 핸들이 돌아가고, 액셀을 밟아도 바퀴가 헛돌았다. 풀액셀을 처음 밟았다. 눈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에 풀액셀을 밟지 말라고 어디선가 본 것 같았는데 나는 언덕 중간에 있었다. 액셀을 놓는 순간 차는 뒤로 밀릴 것 같았다. 눈 속에 박힌 타이어를 풀액셀로 꺼내면 그다음에는 핸들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오늘의 목표는 내 생일이고 뭐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 밖에 없었다. 오늘 집에서 무사히 다리 뻗고 잘 수 있다면 그게 오늘 내 생일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 정문에서 한참을 올라가는 후문 쪽이었는데 집까지 갈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더 심한 경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문까지 도착하자 경비원분들이 염화칼슘을 뿌려주고 계셨다.
그분들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사고가 더 많이 났을 거다. 감사합니다 ㅠㅠ
아파트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으로 주차를 하고 집까지 걸어왔다.
너무 무서웠지만 뒤에 첫째가 있어서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깨에 몰린 피로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오늘 일은 첫째와 나눌 수 있는 모험담이 되었다.
운전을 한 지 7년이 되었지만 나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웬만해서 운전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운전도 일주일에 1~2번 밖에 하질 않아 운전 실력은 초보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부로 나의 운전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죽지 않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킨다...
4. 흰머리를 발견했다. (내 생에 3번째 흰머리)
뭐.. 언제나 검은 머리일 수는 없잖아.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흰머리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이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런데 흰머리를 볼 때마다 나 열심히 살았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짠하다.
앞으로는 더 자주 마주칠 텐데
성숙하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5. 내가 먹고 싶었던 케이크 가게는 휴무일이라서 내 생일 당일에는 케이크도 먹지 못했다.
예약해야 먹을 수 있는데 예약도 하지 못해서.. 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오늘자로 예약해서 딸기케이크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생일 2번 한 것 같아서 생일의 여운이 길다.
40년 동안 열심히 살았네 수고했다.
내가 좋아하는 김신지 작가님의 어머님이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앞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야 스트레스를 사서 하는 INFJ...)
"어마야, 니 서터레스를 왜 받나. 그거 안 받을라 하면 안 받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