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전염병이 무섭다..
둘째가 A형 독감에 걸렸다.
며칠 마스크 사용을 소홀히 한다 싶었다... 학교에서는 독감이 유행이라는데.
심한 반은 아이들 절반 이상이 안 나온 반도 있다는데. 그래도 무사히 넘어가려나? 했지만
둘째 친한 친구가 독감으로 안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느낌이 싸했다...
나쁜 느낌은 틀리지 않는다.
그날 둘째가 고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왠지... 독감일 것 같다는 촉이 왔다.
다음 날 반차를 쓰고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사람이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렇게 1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들은 결과는 A형 독감.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이틀 연가를 썼다. 금요일엔 남편이 쓰게 될 것이다.
내일이 내 생일인데 나는 독감에 걸린 아이를 케어해야 한다.
워킹맘에게 가장 두려운 건 전염병이다.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
이게 둘째 한 명에게서 멈춘다면 상관없지만
아이가 셋인 나에게는 폭탄 돌리기 같은 느낌. 첫째, 셋째가 옮기라도 한다면...?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불안감이 밀려온다. 아직 첫째, 셋째가 아픈 것도 아닌데
둘째가 독감에 낫자마자 이후로 줄줄이 아플 거라는 시나리오를 혼자 쓰고 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은 왜 이러나...로 넘어간다.
나의 멘토에게 연락했다.
직장에서 만난 선배님은 아들 둘을 키우며 이 길을 먼저 지나오신 육아 선배이자
F의 감성도 지니고 계시지만 T가 확실하셔서 마냥 위로만 해주시는 분이 아닌
나에게 필요한 적절한 조언을 해주시는 분인데
나는 그분 앞에서 또 징징이가 되었다.
마스크를 잘 썼어도 걸릴 때는 걸릴 수 있다.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느냐.
불안한 마음은 덮고 최악의 상황이 생겨봤자 가족들이 며칠 더 앓는 것이고 그건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아이 키우는 10년 정도는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은 T인 남편도 해줄 수 있는 말인데 왜 남편이 하면 정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이 해주면 조언처럼 들릴까??)
그분과 이야기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 봤다.
나는 통제성향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잔소리를 잘하지 않는다. (잔소리는 남편의 몫...)
애초에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와 결이 맞지 않으면 서서히 멀어지거나 거리를 두는 편.
내가 상황이나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그곳에서 벗어났다.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내가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공부, 직장생활만 했으니 결혼 전에는 그게 가능했던 환경이었고, 그 틀이 더 견고하고 단단해졌겠지...
이렇게 통제성향이 강한 나는, 육아 전까지 내가 통제성향이 강한 줄 몰랐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은 육아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진 않지만 내 상황만큼은 내가 통제하고 조절하면서 살아왔다.
그게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가족들도 예민한 사람들이 없었던 편이라 내 예측에 벗어날만한 일이 없었다.
육아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으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30년을 나만의 속도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의 컨디션에 맞춰 통제하고 살았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생은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발목을 접질려 반깁스를 하는 동시에 코로나에 걸렸는데도 육아를 해야 했고,
잠을 제대로 2시간 이상 자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씻고, 먹이고, 재워야 했고
내 몸은 물 젖은 솜처럼 너무 무거워도 놀이터에 나가서 지켜보고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이 조금 컸다고 한동안 아이들도 아프지 않았고,
이제 잠도 제대로 자기 시작했고
내 직장생활도 크게 힘든 일이 없었기에 인생이 통제되고 있다고 느꼈나 보다.
다시 예전의 통제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을 때
인생이 정신 차리라면서 내 뒤통수를 크게 갈겼다.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통제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을 때 불편과 불안감이 밀려온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고 살아갔을 수 있었을 테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미워하고
현실로 다가오지도 않은 시나리오를 쓰고
누가 주지도 않는 스트레스를 혼자 짊어지고 사는 일은 없었을 거다.
육아 자체도 힘들지만 내가 스스로 주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와... 나 진짜 하찮은 사람이다.
이런 밑바닥까지 보게 될 줄이야
그래서 겸손해졌다.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알게 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