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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포맷되었습니다.

by 오로시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은 4년 째다.

넘쳐나는 동영상과 사진들을 볼 때마다

'정리해야지... 정리해야 되는데...' 생각만 4년째.


그동안 찍어둔 사진과 동영상들이 쌓이고 쌓여 넘쳐나는데 이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느꼈을 때

와.. 그냥 포맷시키고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다시 폰을 사면 되겠지만

다시 폰을 사기 주저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만이 아니다.

귀찮음 때문이다.

새로 앱을 깔아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되는 불편함.

나는 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고장 나지 않는 이상 나는 핸드폰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을.


젊었을 때는 새로운 것들이 좋았는데..

이제 굳이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데 한편으로는

싸악 포맷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한편에 늘 남겨두고 살았다.


그런데 회사에서 컴퓨터를 포맷한다는 공지가 떴다.

그래. 이참에 확 다 지워버리고 시작하는 거야!

내가 원했던 거잖아?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나는 필요한 파일과 프로그램들을 외장하드에 담기 시작했다.

그 번거로운 과정을 며칠 동안 반복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완전히 비우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원하는 것들만 남기고 싶었던 거구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서 그 속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르는 그 과정이

힘들어서 흐린 눈을 하고 살아왔구나...


포맷이라는 말에 끌린 건

과거를 지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혼란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간결한 것만 지니고 싶었던 거구나.

너무 바빠서 소중한 것들을 추릴 시간과 여유가 없었던 거구나.


지우는 일보다 어려운 건

남기고 싶은 것을 정하는 일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에게 주는 숙제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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