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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나투스 Oct 04. 2021

서른넷이 되었다.

[만약에 세상이 끝난다면]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몇몇 여자를 만났고, 불장난으로 끝나버린 여자들도 몇몇 있었다. 이십 대 초반에는 사랑을 다 아는 듯 떠들어대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너는 사랑이라는 걸 한 번 해봐야 한다.’


한 여자에게 오래도록 정착하지 못하는 나에게 마치 자신은 상대적으로 오래 여자와 사귀어봤다는 한 가지 사실 하나로 우월한 듯 말을 했던 그 친구.


다시 그 친구들을 만난다면 묻고 싶다.


‘너는 사랑이라는 걸 정말 해봤니?’



무언가를 알면 알 수록, 안다고 말하기 어렵고

무언가를 얕게 알 수록, 안다고 말하기 쉽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탁구를 칠 때는 내가 탁구에 대해 꽤나 잘 이해하고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성인이 되어 탁구 시합에 참가하고 준비하면서, 내가 탁구라는 것의 아주 작은 부분만 알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했다.


수영 역시도 모든 영법을 익히게 되고 2~3년 정도 수력이 생겼을 때는, 내가 수영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또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튜브를 통해서 수영 전문가들의 심도 깊은 코치를 받게 되고 새로운 부분들을 알게 되자 수영의 세계는 넓고, 정말 내가 모르는 게 많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됐다.


어느 이름 모를 책에서 말하길, 중국을 하루 여행하면 책을 10권을 쓰고 일주일을 여행하게 되면 1권을 쓰고 한 달을 여행하면 한 페이지도 쓰지 못한 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그 말이 맞다는 걸 살아오면서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있는 걸까.


다시 한번 그 사랑 전도사인 친구에게 묻는다.

‘너는 사랑이라는 걸 얼마나 알고 있나?’


그리고 군인이던 20대 초반, 선임들은 만나 왔던 여자 이야기 - 사실 여자와의 잠자리 이야기 - 를 많이 했었고 그때까지 여자와 한 번도 몸을 섞어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냥 ‘섹스는 때가 되면 하게 되는 것’이라는 편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라는 커밍아웃을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발표했다.


그 후로 나는 몇몇 선임들에게 ‘아다 새끼’라는 호칭을 얻었으나 전혀 신경이 안 쓰일 정도로 부끄럽지도 불명예스럽지도 않았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당연한 일을 가지고, 마치 자신들은 먼저 섹스를 경험했다는 것 자체로 으스대는 그들을 보자니 멍청해 보였고, 또 멍청해 보였다.


30대의 초반에 들어섰을 때부턴


‘아다 새끼’ ‘한 번도 안 해본 놈’

‘사랑이라는 걸 좀 해봐야 한다’


따위의 문장을 입으로 뱉으며 뭘 좀 안다고 우월해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자연스러운 순리로든, 혹은 어둠의 경로로든 섹스라는 걸 경험하게 되고, 그게 으스댈 정도의 일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조차도 짧든 길든 가슴앓이 비슷한 것을 해보고, 눈물이라는 것도 흘려보고 나서는 타인에게 ‘너는 사랑을 해봐야 한다’라는 경솔한 말 따위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도 누군가와 1~2년 남짓 만나면서 혹은 여러 번의 이성을 사귀면서 생각하는 게, 사랑 비슷한 것들을 몇 차례 경험하게 될수록 오히려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점점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30대가 되고 나서는 오히려 모두가 어른 인척, 다 이해하는 척, 포용하는 척을 하게 돼서 그런지 몰라도 20대 때 만났던 다듬어지지 않은 말을 뱉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조금 더 솔직하고, 당돌하고, 남 눈치 보지 않는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쉽게 말하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남을 꼽을 주거나, 자신이 더 아는 양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냥 자기 욕망에 대해서만 스스로 솔직하게 표현할 뿐이다. 그런 솔직함이, 솔직하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학창 시절, 그렇게도 갈망했던 성인이 되고 서른 중반이 되어버린 지금 만약 세상이 끝난다는 명제가 현실이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될까.


여행지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그 여자와의 하룻밤처럼 주변에 사는 이름 모를 여자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허탈함에 담배를 한 까치 태우며 길을 배회하게 될까?


평소 타보고 싶었던 그 차를 렌트를 하든 훔치든, 아무튼간에 구해서 광안리나 해운대 해수욕장 앞을 문을 연채 팔을 내밀고 느긋이 달리고 있을까?


혹은 인연이 끊기게 된 친구에게 찾아가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잘 지냈냐고, 한 편으로는 미안했다고, 종종 생각이 많이 났다며 이야기를 할까.


또는 기억에 남는 과거의 연인에게 찾아가 잘 지냈냐고, 나는 종종 너를 생각하곤 했다고, 그때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될까.


아니면 엄마, 아빠에게 찾아가 이렇게 건강하고, 멋지고, 남부럽지 않게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눈을 마주 보면서 나긋하게 전하게 될까. 그러면서 우리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식적인 포옹이 아닌 정말 끈적한 포옹을 하게 될까?


무엇을 하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참 별 것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지금이라도 금방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세상의 끝을 맞이 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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