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아웃

by 일경

언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이 녀석의 존재를.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건 대학생이 된 해 여름이었다. 어느 날, 씻고 나서 거울을 보는데 배꼽 위에 웬 까만 점 같은 것이 생겨난 걸 발견했다. 그때는 ‘아, 점이라는 게 이렇게 뜬금없이 생기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점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걸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했었다.


그해 여름은 바쁘게 살았다. 방학이라고 집에만 있으면 괜히 잡생각만 하게 될 것 같아 홧김에 넣어본 아르바이트 지원이 덜컥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름이 성수기인 과일 주스를 파는 일을 했으니,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내 시간이라곤 없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도 온전히 내 시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는 장점과 동시에 나의 수명도 빠르게 줄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일이라는 게 돈 벌자고 하는 거니까. 그거 하나만 보고 버텼던 것 같다. 일한 만큼 돈을 받았으니 한 푼이라도 아쉬웠던 그때의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위안 삼을 수 있었다.

나는 하필이면 땀이 많은 체질이다. 여름에는 더더욱. 종일 땀을 흘려가며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에서 쉰내가 펄펄 나곤 했었다. 그런 나의 상태를 온종일 느껴서일까,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샤워였다. 점이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내일이 휴무임을 기념하기 위한 파티를 계획했다. 파티라고 해봤자 통닭 시켜놓고 맥주 한잔이었지만. 그렇게 집에 도착한 나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샤워를 끝마치고 몸을 닦으며 거울을 보는데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배꼽 위의 까만 점이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말끔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이게 왜 갑자기 사라진 거지.’ 하는 생각은 이내 ‘에라 모르겠다. 나 얼른 닭 뜯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배꼽 위 까만 점의 의문은 녀석이 그러했듯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게 까만 점의 행방은 해프닝 같지도 않은 수준의 것으로 끝나는 듯했다.


녀석이 다시 나타난 건 3년 후, 군 복무 시절 종합검사를 받았을 때였다. 병사로 입대한 나는 일 년에 한 번, 몸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봤자 2년도 안 되는 군 생활이었기에 사실상 복무 중 한번 받을 수 있는 검사였다) 소변, 피 검사부터 엑스레이 청각, 시각, 치아 등등 꽤 정밀한 검사였기에 그날은 온종일 병원에 있었다.


나는 흉부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실 앞 대기석에서 앉아있었다. 이제 무슨 검사가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 복도 끝에서부터 심각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군의관의 모습이 보였다.

“너, 방금 사진 찍은 애 맞지?”

군의관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예… 맞습니다!”

괜스레 불안해졌다. 담배를 좀 더 일찍 끊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와 군의관은 엑스레이 결과를 보기 위해 진료실로 향했다. 기묘했다. 수많은 환자를 본 의사인 그가 굳이 그런 심각한 표정을 식은땀까지 흘려가면서 지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고작 엑스레이 사진임에도 말이다.

“이게… 네 흉부를 찍은 엑스레이. 여기 너도 보이겠지만…”

나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그 점이었다. 근데 이상했다.

“…아마도… 다시 찍어야…”

왜 그 점인지 알 수 있었냐면, 그 녀석이 배꼽에서부터 뿌리내린 모습을 띠고 있었고

“…나도… 이런 엑스레이는 본 적이 없어서…”

아니, 이젠 점이라고 할 수 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곤충의 고치랄까, 아니면 거대한 애벌레라고 해야 할까

“…이게 이럴 리는 없는데, 다시 찍어보는 게 어떨까…”

그런데 나는 왜 바로 알 수 있었지? 내 몸 안에 저런 게 있다는 게 왜 놀랍지가 않지? 마치 심장과 갈비뼈, 허파와 간, 위가 있는 듯 그저 내 몸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군의관은 나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찍어보자는 군의관 말에 알겠다는 행동을 취하고 다시 엑스레이 실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사진을 뽑아 든 군의관은 다시 한번 얼어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군의관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겁니까?”

군의관은 새롭게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안에는 있어야 할 장기와 뼈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기계 오작동이라며 검사 결과를 정상으로 처리했지만, 의아한 점은 한참을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까지 당황하며 땀을 흘릴 일인가? 하는 물음이. 군대가 그렇지 라며 그 사회에서만 형용 가능한 논리에 억지로 이해한 나였지만, 아무튼 그 점은 아니 그 녀석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녀석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6개월 전쯤부터였다. 배꼽에서 시작된 검은색의 긴 줄, 그 끝에는 3년 전 엑스레이에서 봤던 녀석이 있었다. 탯줄로 연결된 어미와 자식의 모습이 녀석과 내가 연결된 모습이랑 비슷하다면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을까. 나도 이런 비유를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 여섯 개의 다리, 그 끝은 날이 서 있었고 두 개의 관절을 가지고 있었다. (손가락의 관절 모양이 그렇다.)흡사 방패 모양의 등갑은 윤기가 흘러 견고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 아니 얼굴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7살에서 8살 정도 되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와 연결된 검은 줄은 녀석의 가슴과 이어져 있었다.


그날은 월요일 아침, 업무가 많은 주였는지라 평소 기상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요란하게 울려대던 핸드폰 알람을 끄고 잠깐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는데 순간 송곳으로 배를 쑤셔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소리를 지르며 박차고 일어나니 어디선가 낯선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형광등의 스위치를 눌렀다. 녀석은 나를 바닥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형 강아지 정도 되는 크기의 녀석을 보고 잠시 10초 당황, 그렇게 정적. 혹시 늦게 일어날까 싶어 몇 개 더해둔 알람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정적을 깼다.

“아, 출근해야 해!”


그렇게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곤 회사에 도착했다. 어찌어찌 급한 업무를 끝내고 한숨 돌리는데 문득 아침에 봤던 녀석이 떠올랐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칸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뒤 조심스럽게 옷을 들춰보는데, 녀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까 봤던 검은 줄은 물론이고 자그마한 흔적 하나까지.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넥타이를 대충 풀고 가방을 침대에 던진 뒤 냉장고 문을 열어 캔 맥주를 꺼냈다. 씻을 기운도 없이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 순간, 아침에 느꼈던 엄청난 복통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맥주를 엎었는지도 모른 채 버둥버둥 대며 앓기 시작했다. 고통이 사그라질 때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책상 위, 녀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과 6개월 남짓 지내본 결과, 알아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녀석은 아침이나 밤에만 나타난다. 시간은 정확하지 않으나 내 일과가 끝이 나거나 시작할 때 나타나는 듯했다. 기이하게도 새벽까지 지인들과 술을 먹거나, 아침까지 일하는 날엔 나타나지 않았다. 둘째, 꼭 심각한 통증과 함께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내성화가 되는 듯했다. 처음에는 정말 맹장염이라도 걸린 줄 알았을 만큼 아팠던 통증이 6개월이 지난 현재는 속 쓰린 정도의 통증이 되었다. 셋째, 녀석은 빠르게 자란다. 강아지 정도의 크기였던 녀석이 이젠 유치원생의 모습쯤 되는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고양이와 개를 섞은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게 전부. 나는 녀석에 대해 이질감도, 친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엑스레이로 봤을 때의 느낌처럼 원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녀석에게 아니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끈하는 고통. 녀석이 왔다.

“야! 이젠 좀 안 아프게 올 수 있는 거 아니냐?”

참았던 울분이 터졌다.

“네가 뭔지는 안 궁금한데 매일, 그것도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침, 저녁으로 이게 뭐 하는 짓이냔 말이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녀석에게 맹비난을 쏘아댔지만, 그저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녀석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표정도 마음에 안 들었다. 살짝 짓는 미소가 날 비아냥대는 것 같았다.

나는 주방에 가 칼 한 자루를 쥐었다. 그리고 내 배꼽에 연결되어 있던 검은 줄을 잡고 날을 들이밀었다. 심호흡하고 내려치려는 순간,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복통이 나를 찾아왔다. 칼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굴뒹굴하며 신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그런 나를 옅은 미소와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회사에서 나에게 걱정이랍시고 참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생기가 사라져 보인다나, 살이 너무 빠졌다나. 오지랖도 유분수지. 여유로운 사람들이 회사에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렇게 일이 많은가. 저 사람들 일도 내가 하는 건 아닐까. 뭐, 알 바 아니다. 나는 더 열심히 해서 승진도 하고 뭐 같다 싶으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해야지. 한심한 사람들.


아침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업무를 하고 집에 오면 항상 늦은 밤. 맥주를 먹으면 녀석이 오고, 화 좀 낸다 싶으면 갑자기 힘이 쫙 풀려 씻지도 않은 채 잠자는 일상. 오늘도 역시 쿰쿰한 쉰내가 몸을 진동함에도 씻을 힘이 없다. 엎어버린 물처럼 침대 위 흐느적대는 나를 녀석이 바라보고 있었다.

“너… 이… 그만… 쳐다봐….”

나는 고개를 가까스로 들어 싱긋 웃고 있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이… 개새… 하아.”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대체 무엇인가? 나한테서 무엇을 바라기에 뜬금없이 나타나 이렇게 내 화를 돋우는 것인가? 녀석이 주기적으로 주는 통증과 하필 많아진 업무량, 그리고 저 얄미운 미소가 나를 미치게 한다. 내 광기는 이내 우울증으로 변해 나를 한입에 집어삼킨다. 이걸 우울증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다가 알람 소리가 울리면 나는 출근 준비를 하겠지. 나는 왜 살아가는가. 이 회사에서 노예처럼 일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저 쓰임새를 잃게 되면 버려지는 소모품의 삶으로 전락하진 않을까? 이게 물음이 맞는가? 너무나 선명한 미래가 물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끝없는 물음표는 출근을 명하는 알람 소리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아, 출근해야 해.”

나는 오늘도 남들보다 일찍 나와 출근을 한다. 많은 업무량은 물론이거니와 요즘은 밥을 먹는 것도 영 탐탁지 않아 끼니를 자주 거르게 된다. 밤 11시. 이제야 컴퓨터 전원을 끈다. 적막만이 흐르는 사무실, 어느샌가 모니터 위에 녀석이 걸터앉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기운이 없는 탓에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는데, 녀석이 나타날 때마다 생기는 복통이 방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연결된 검은 줄도 사라져 있었다. 녀석은 의자에 흘러 내린 듯 걸쳐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놈의 눈빛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깔깔깔깔! 낄낄… 큭큭… 깍깍!… 깔깔깔깔!!”

녀석의 미소가 갑자기 괴기하게 찢어진 입으로 변하더니 쾌감을 맞이한 듯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 주‐ 맛있는‐상태가‐ 되었구나!”

맛있는 상태라. 무엇이 맛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화가 났다. 이 녀석 말할 줄 알았으면서 여태 나를 조롱하였구나. 개 같은….

“잘‐먹겠‐ 습‐ 니‐ 다‐!!!”

괴물의 입이 사람을 삼킬 만큼 커지더니 남자를 단숨에 낚아채 뱀처럼 꿀떡꿀떡 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화를 시키는 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댔다. 괴물은 성인 남자만 한 모습이 되어 책상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잠시 후, 회사의 경비원이 불이 켜진 사무실을 보고 들어와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뭐야. 불을 끄고 퇴근을 해야지. 이런….”


경비원이 사무실의 불을 끄고 자리를 비웠다. 고요한 사무실, 갑자기 형광등이 켜진다. 어디선가 고양이와 개를 섞은 듯한 짐승의 울음소리, 아니 웃음소리가 옅게 울려 퍼졌다가 사라진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엔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