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과 소라게

가장 예쁘게 펴놓고 험난한 꼴은 다 본다고.

by 일경

벚꽃은 피어날 때도, 만개해서도, 질 때도 예뻐. 우리 엄마는 목련을 보면 슬프대. 가장 예쁘게 펴놓고 험난한 꼴은 다 본다고. 벚꽃이 흩날리던 날, 굳이 목련 생각이 난 이유가 무엇일까. 잃어버리는 것보다 속상한 건 잃어간다는 것일 거야. 슬플 새도 없이 잃어버리고 싶다. 그래,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삶이긴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배가 고팠어. 며칠을 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는 주변에 먹을 게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젠 먹을 수 없는 것들 천지야. 혹시 모르는 마음에 앞을 걸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벌판이었지만, 어쩌겠어. 살려면 움직여야지.

바람도 불지 않던 밤, 그렇게 고요한 바다는 처음이었어. 나는 엄마랑 마주 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더는 못 걷겠다고 말씀하셨어. 이젠 힘이 없다고, 너라도 살아남으라며 고개를 숙이시던 모습에서 난 왜 목련이 생각나던지.


그래. 엄마를 먹었어. 그녀의 관절을 비틀어 그 안에 얼마 남지 않은 살을 파먹었어. 거대한 소라껍데기에서 그녀를 끌어내 내장을 파냈어. 어찌나 굶었는지 껍질에 윤기 하나 없더라. 너무나 잘 바스라 졌어. 그래서 너무 쉽게 먹었다. 엄마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게 아니라고 했어. 이미 새로운 소라껍데기를 구했어야 하는 내 몸은 덫에 걸린 짐승의 모습처럼 옥죄어져 가고 있었고, 어차피 이런 식으로 힘없이 움직이면 갈매기 따위의 먹이가 될 것이라는 걸 그녀는 예상했던 거야. 그래, 새로운 껍질에서 충분한 에너지로 새 출발 하길 바랐던 거야. 나는 그게 너무 슬펐다.


이상하게 그녀를 허겁지겁 파먹는 동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는데, 다 먹고 나니 뚝 그치게 되더라. 그건 아직도 기묘해. 왜 그랬을까? 눈물은 왜 난 것일까? 어미를 먹는다는 자신의 비윤리적인 태도에 나는 구토 섞인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파생된 외로움에 나는 눈물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오랜만에 먹는 살코기의 맛이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던 것일까. 뭐가 되었든 그녀는 행복할 거야. 잠시 아팠을 그 순간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나는 아마 이런 쓸데없는 고민 덕분에 눈물이 그쳤을 것이다. 배가 너무 아파서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몸부림을 쳤다. 그래도 바다는 조용하더라. 갈매기도 자는 시간이었나 봐.


나는 엄마의 등껍질을 손에 쥐고 발걸음을 이어갔다. 어미의 살코기를 먹어놓고선 그 등껍질에 들어가는 건 도저히 아니었나 봐. 더러운 위선자의 모습이라도 되고 싶었나 봐. 그게 아니면 그만 잃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몸속에 기생충이 나의 살들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그 느낌은 살짝 간지러우면서도 따끔한 느낌이야. 차라리 갈매기가 콱 물어가 줬으면, 껍질 덫에 못 견뎌 숨이 막혀버렸으면, 거대한 엄마의 소라껍데기보다 내 다리들이 더 무겁다.


잃을 게 없는데도 잃어간다는 것만큼 슬픈 건 없을 거야. 그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을 거야. 나는 목련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바닥에 떨어진 순백의 모습이 시커멓게 썩어버릴 때까지 얄궂은 운명을 한탄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 다 갉아먹어라. 나는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갈매기가 지나가길 바라면서. 이상하게도 바다는 정말 조용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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