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없었던 걸로 치자! 라고 하기엔 2020년은 참 기억에 남는 해다. 그것은 지난날과는 다르게 평화를 누리지 못한 환경의 탓이 크겠지만, 나에겐 스스로 부여한 도전을 이행하고 이를 통해 한 발자국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상반기엔 학교에 내려가서 공연을 준비했고, 감사하게도 나름(?) 멋지게 올리게 되었다. 나만의 비공식 졸업공연인 셈이었다.-학교에서의 마지막 공연이었기 때문에-사실 졸업을 하는 이 시기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연극을 하면서 먹고 사는 건 고사하고, 내가 정말 평생 연극을 하며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왜 연극인가, 왜. 라는 질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얼른 찾아봐야 한다는 압박감 역시 나를 옥죄었다. 그러나 이 공연을 하게 되면서 머리론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깨닫게 된 것이 내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그것은 유대였다. 희로애락과 신뢰를 공유하는 관계. 그런 유대는 마치 잘 만들어진 수제 시계 속 수많은 톱니바퀴의 모양새와 같았다.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내가 단체 예술을 택한 이유가 여기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것도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이니까,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예술하고, 연극하자. 참 좋은 타이밍에 마주한 삶의 기회였던 것이다.
하반기엔 또 다른 나의 모습인 글 쓰는 김일경에게 집중하였다. 사실 나는 이미 군대를 전역한 18년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기가 적힌 다이어리를 누가 볼까 싶어 자물쇠로 잠그는 사춘기 아이들처럼 나는 내 글을 참 부끄러워했다.-부끄러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글들을 SNS에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난 나의 치부(?)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부끄러움을 즐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뭔가 올해부터는 숨기지 말아보자! 라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결과적으론 부끄러움을 극복하게 되면서 글쓰기 작업에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약 50편의 소설, 에세이를 썼고 세 편의 희곡과 한 편의 시나리오, 희곡 각색, 소설 의역 등등 나름 열심히 쓴 것 같다. 재밌었고, 행복했다. 나는 사실 소심하고 보수적인 성격인지라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앞서 얻는 것보다 잃게 될 것에 대한 계산을 먼저 했다. 그래놓고 아, 그냥 한번 해볼 걸 하면서 아쉬운 소리나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름(?) 만족할만한 도전을 마치면서 앞으로 그런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이를 통해 내가 행복하고, 만족하게 될 것들에 대한 것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 위 글과 비슷한 갈림길에 놓인 사람이라면, 작게나마 내 이야기를 참고하시길!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도전에 대한 것 외에도 올해는 참 유별났다. 나포함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의 소중함을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연말 분위기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말 다한 것 아닐까 싶다. 절망이 가득한 요즘 분위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세를 취해야겠다. 아무튼, 모든 사람이 내년엔 아프지 않고, 다시 소중한 것들을 누리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