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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Feb 01. 2022

아카이브 1

일러두기
1. 이 프로젝트는 사무엘 베케트의 후기 희곡을 오마주한 희곡을 만들어 2023년에 공연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둔다.
2.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지금 내 프로젝트에 가장 알맞은 자료(내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중앙대학교 유정숙 님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후기희곡에 나타난 등장인물의 오브제화(objectification)에 대한 연구> 논문이라고 판단했고, 이를 기반으로 희곡 제작을 진행하고자 한다.
3. (앞으로도 심심찮게 올라오게 될) 본 글은 인상 깊은 논문 내용을 인용하고 그 아래 관련한(짧고, 하찮은) 내 생각을 기재함으로써 자료의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 목적을 둔다.
4. 아래 기재한 모든 개인적 의견(생각)은 기본적으로 무지함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p1
등장인물의 오브제화는 전통적으로 연극에서 인간을 사실적으로 모방해온 등장인물이 인간적인 특성들을 상실하고 비생물체인 오브제(object)의 속성을 띄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베케트의 희곡들은 등장인물이 오브제화 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주체 개념의 해체에서부터 시작한다. 베케트의 희곡에서 알 수 없는 우주 속에 던져진 등장인물들은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주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자신의 무지와 무기력을 자각하며 점차 이름 없는 사물로 전락해간다.

▶ 들어가기 전에, 등장인물의 인간성을 상실한 희곡을 왜 만들고자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해야겠다. 베케트의 희곡은 주로 인간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일상에서 내가 하는 생각과 멀지 않았고, 나는 이에 호감을 느꼈다. 동시에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베케트는 본질이 아닌 모든 것을 배척하는 것에 집중했고 이는 무대 위에 본질만 남기고 싶어 하는 나의 연출 성향과도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공통점을 감히 비교할 만큼 나에게 베케트는 멘토 그 이상의 존재다.베케트는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간 자체를 무대 위에서 지워버렸다. 인간성을 상실한 오브제로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러니함과 동시에 참인 명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의 본질은 우리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해보라면 할 수 없듯 말이다.
  
p1
오브제 그 자체는 본래 어떠한 가치판단도 가해지지 않은 중성이다. 그러나 만물의 척도이던 인간이 오브제가 되는 현상에는 추락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며 그것을 자각하는 인간의 고통이 함유되어 있다. 그러나 베케트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의미론적인 측면에서 비극적으로 오브제화되는 것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언어가 회의되고 의사소통이 단절되어있는 시대를 위한 새로운 표현기법의 발명과 직결된다. 즉 연극에서 표현의 영역이 확장된 오브제의
개념과 만나면서 등장인물은 살아있는 오브제로서 외적인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산출하게 된 것이다.

▶ 베케트가 2022년에 살고 있었으면, 어떤 오브제로 인간을 표현했을까? 불쾌한 골짜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무대 위에 올렸을까? 감히 상상하건대, 베케트라면 무대에 인간을 굳이 올릴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수많은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어 대체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인간의 오브제화가 ‘만물의 척도’라고 하는 우리에게 좌절과 추락을 안겨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영원히 만물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가. 기계 친화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기보다, 점점 기계 앞에 우둔해져 가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춰 생각해보면 ‘인간성을 상실한 오브제화’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해보니, 나는 어쩌면 인간 본질을 집중해서 이야기하기보다 단순 풍자의 성격을 지닌 희곡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과연, 그런가? 고작 풍자하고자 이런 연극을 구상하는 것인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건, 계속 공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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