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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Dec 31. 2022

2022 회고

솔직히 말하면 내게 2022는 없는 해 같다. '없는 해'라 스스로 정의하는 해는 내 인생에 딱 두 번이 있었는데, 그것은 2017년에 한 번, 그리고 올 해가 그러하다. 2017년은 내가 군 복무를 하던 22살 때였는데, 그 해는 365일 내내 군에 있었다. 같은 생활과 같은 감정이 겹치는 날이 너무 많은 탓이었을까, '2017년에 뭐 했니?'라고 묻는다면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가길 너무나도 원했던 욕구만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2022년은 군인도 아니면서 왜 없는 해라 정의하는 것일까? 

2022 회고를 위해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쓰다가 모두 지우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게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간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많은 고민과 다짐으로 이루어졌던 것들이 전부 나를 떠나고, 새로운 상황과 고민거리,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새로운 삶!' 문장은 그럴 듯 하지만, 늘 새로운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1. 가족

오랜 시간 마음의 짐을 갖고 있던 아버지와 절연을 했다. 아버지는 늘 나를 깎아내리는 표현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나는 이와 같은 표현이 그가 하는 서툰 표현 중 일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처를 받아왔다. 결정적인 사건은 별 일이 아니었다. 친가 행사를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느 날과 다름없이 험한 말을 듣던 중, 나도 모르게 울분을 터트리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와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식 된 도리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내겐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보호를 받는 입장에서 하는 입장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내가 현재 독립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집을 보호할 역할을 이제 내가 해야 한다는 걸 머리가 아닌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지랖이 서려있는 책임감이 없잖아 있겠지만, 나는 결국 그런 걸 느껴버리는 사람이다. 좋고 싫음을 떠나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싶다. 새로운 상황이 나를 찾아왔다.       


2. 사람

올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작별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잘못은 당연하거니와 우리의 잘못이 컸기 때문이었으리라. 내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였다. 사람에 그리 정을 가지지 않는 성미 덕분에 큰 상처 없이 잘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 잘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이, 그것이 보이지 않던 내가 이제는 너무 선명히 보여 괴롭다.


사람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손익을 따지지 않는 절대적인 믿음과 진심 어린 태도는 늘 통한다는 걸 과거엔 몰랐다. 이런 믿음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더라도 이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게 내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가 무색할 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변하지 않음으로써 소중한 것을 찾아야 하고, 그것에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3. 직장

눈물겨운 계약직 생활과 취준을 마무리하고 5월, 지금 회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내 스펙(?)에는 들어오기 쉽지 않은 회사임에도 감사히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회사의 분야와 나의 직무는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들이 절묘하게 교집합을 이뤘다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재밌게 일하고 있는 것은 물론, 지표화 할 수 있는 성과도 이룰 수 있었다. 그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커리어도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내 분야에서 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감과 책임감을 한껏 머금게 되었다.


그러면서 암담하고 불안한 미래에 그저 올곧은 태도만 유지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서툴었던 설렘과 에너지는 자신감과 책임감이 되었다. 그렇게 삶을 이루는 에너지도 바뀌고 있다. 나를 떠나는 녀석들이 다시는 안 올 것 같다는 예감 아닌 확신이 들면서, 뒤돌아 손 흔들지만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4. 투자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이는 공감하겠지만, 2022는 투자자에게 쉽지 않은 해였다. 철저하게 우하향을 하는 해였던 만큼 나 역시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투자가 단순 돈을 버는 것 외에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많은 인사이트가 있어 이를 나열하기 어렵지만, 한 줄 요약하면 투자와 인생은 같다는 것이다. 어떤 마인드 셋을 하고, 어떤 투자를 왜 하느냐에 관한 정의를 스스로 갖고 있다면 투자(인생)는 실패하지 않는다.


나아가 절대 실패하지 않는 투자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를 독서와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올해는 특히 운동을 집중적으로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별생각 없이 그냥 해볼까? 하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이젠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운동을 알려주는 선생님은 내게 "공으로 하는 스포츠나 연필로 보는 시험은 운이 작용해서 실력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웨이트) 운동은 절대 그럴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만으로도 운동을 지속할 이유가 있다. 물론 건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운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5. 2023, 책

많은 것을 떠나보내고, 마주하는 해였던 2022에도 유일하게 남은 것이 있다면, 나의 글이다. 내년 초, 첫 에세이 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에세이는 내 20대의 등대와 같은 스승님을 향한 마음에서 기획되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수익금 전액은 청소년에게 쓰일 것 같다. 그가 우리(나)에게 그러했듯, 나도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물론,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긴 할지... 겁도 많이 나지만, 그래도 하기로 했다.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함에 있어 내 주관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 중 하나다.


모쪼록 내 인생은 다음 스탭으로 향하는 것 같다. 어딘가로부터 독립을 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야 안정을 찾고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삶은 나의 집을 뺏고, 보따리 하나만 쥐어준 채 대문 밖으로 날 걷어차는 듯하다. 엉덩이는 아프지만, 그래도 나가야지 뭐. 2023년은 어떤 삶이 펼쳐지려나, 의연한 마음으로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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