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 옮길 운에 목숨 명으로 이루어진 단어의 뜻을 보고 재미를 느끼게 된 건, 목숨을 지칭하는 '명'의 뜻은 비교적 쉽게 유추할 수 있었음에 반해, 내게 좋은 상황을 선사해 주는 뜻을 가졌다 생각했던 '운'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뜻을 가진... 그러니까, 럭키 운(?)이 아닌 옮길 운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그렇게 옮길 운을 곱씹으면서, 뭘 옮긴다는 것인지 생각해 보다가 이내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보통 우리가 "운이 좋았다."라는 문장을 한자 뜻으로 재해석해보면, "옮긴 것이 좋았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결국 우리의 삶이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세계가 흐르고, 그렇게 흘러가는 세상에 맞춰 내가 움직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로 운명이 '옮겨지는 나의 목숨'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움직이는'이 아닌 '옮겨지는'이라는 형용사로 정의한 이유는 우리의 삶은 주체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가지는 것은 무엇이고, 그러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각 개인에게 주어진 환경과 성향에 따라 정의된다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생각하면 주체성을 가지는 것은 성향이고 그러지 못한 것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앞으로 환경과 성향이라는 요소가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한 고찰에서 기술할 것이다(능력이 된다면). 추가로, 희망하건대 어떤 요소에 집중하여 삶을 살아야 나의 운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에 관한 생각까지 기술할 수 있다면 좋겠다(이는 서두에서 언급하였어도, 그러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맺음할 수 있음을 미리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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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태초의 환경은 거시적이다. 동시에 그것은 내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닐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어쩌면 수정이 이루어지는 때에 본능적으로 생명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으니 그것 역시 나의 선택인가 싶었다. 위 생각은 그렇다면 선택이란, 지성과 이성이 들어가야지만 당위성을 얻는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파생되었다. 그러나 이걸 읽는 당신도 알다시피, 모든 선택은 지성과 이성으로만 전개되진 않는다. 고로 내게 주어진 환경은 어쩌면... 내가 가진 이성과 지성의 함유량이 낮으면서도, 어찌 되었던 나의 선택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말하는 환경의 주어는 문단의 머리에서도 이야기했듯, 태초의 환경을 뜻한다. 태아 때 삶의 지속을 위해 했던 작지만 위대한 선택은 수십 년 삶의 초석이 된다. 인종, 나라, 계절, 젠더, 부모의 경제적 상황, 사회 및 시대적 상황, 임신 및 출산의 상황 등... 아직 태어나기도 전부터, 태어나기로 선택한 내가 마주하게 될 태초의 환경은 본격적인 삶의 큰 방향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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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성향은 부모님이 주신 유전자 성질과 함께, 환경의 영향이 섞여 점차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성향은 환경보다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운명의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전자 성질과 태초의 환경이 선사하는 상황을 나는 끊임없이 마주하고, 선택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방향성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나의 성향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인식은 정체성 설립과도 긴밀한 관계라고 볼 수 있겠다.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유전자의 성질과 지성과 이성이 적게 함유 된 선택으로 이루어진 환경은 나의 상황을 제시하고, 선택하게 만들면서 스스로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인 지에 관한 인식을 하는 것이 정체성 설립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리하면, 결국 두 요소... 태초의 환경과 부모님의 유전자는 살고 싶다는 나의 욕구에서 이루어진 선택을 제외하곤 온전한 지성의 선택은 없지만, 이 둘을 끊임없이 마주하면서 하게 되는 선택은 나의 의지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의지는 결국 나의 성향을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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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위에 언급했던 대로 모든 선택은 지성과 이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향의 인식은 정체성 설립 그 자체로써 정의되지 못하고 긴밀한 관계로써만 맺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성향은 어떤 면에서는 나의 정체성 설립을 돕지만, 또 어떤 면에선 정체성에 관한 인식을 필요 없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이러한 느낌은 아예 무감각한다는 뜻과 같다). 즉, 정체성 설립은 누군가의 운명엔 그리 큰 연관성을 맺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화두를 돌려, 우리는 그럼 왜 자아를 찾고, 나의 정체성을 알고 싶어 하며... 그것을 나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마주하는 유전자 성질과 환경의 조합으로 생겨난 셀 수 없는 여러 상황은 하나의 개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주체적으로 본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도, 그리하지 않고 순응하고 사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하나의 개인과 그들의 세상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이유는, 각 개인이 원하는 통제와 선택이 가진 성격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의 성격은 같은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다른 선택을 하여 갈림길로 나뉘게 되는 현상을 발휘한다. 갈림길의 예시로 봤을 때, 우리의 운명은
> = 이동
1. 태아의 선택 > 2. 태초의 환경, 유전자 성질 부여 > 3. 두 요소가 합쳐진 상황 조우 > 4. 선택으로 인한 갈림길 > 5. 새로운 환경 부여, 선택으로 인한 갈림길 > 6. 또 새로운 환경과 갈림길 > 7. 또 새로운 갈림길...
이와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볼 수 있겠다. 이러니 인간이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모든 상황을 본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만 선택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운'의 성질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러지 못한다 확신하는 아이러니를 인간은 겪는 것이다. 내 생각에 그래서 더욱 불안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은 사실상 계산 아래서 할 수 있지만, 인간이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 입장에서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이와 같이 인정할 수 없는 인간의 태도가 본질적인 불안의 원동력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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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요소에 집중했을 때 운을 내 삶에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가에 관해 여기까지 기술하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환경도 성향도 내 삶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가 나의 삶을 좋은 운으로 이끈다는 말인가? 참으로 고리타분한 답이지만, 그래서 참 기술하기 싫지만... 역시 다른 요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철학(신념)'과 '만족'이다. 철학(신념)은 내가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더라도 다른 방향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정적이다. 어쩌면 당장 내게 좋지 않을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여 그에 합당한 고통을 겪더라도, 철학(신념)을 가진 사람은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녕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지더라도, 그는 본인의 삶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한 철학을 이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운을 가졌다고 느낄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만족과도 이어진다. 만족은 굳센 성질을 가진 철학(신념)과는 다르게 참으로 자애롭다. 자애롭다는 단어를 쓸 만큼 '만족'은 언급한 철학을 가진 이는 물론,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좋은 방향의 운을 제시해 준다. 만족하는 사람은 고유의 철학이 없더라도,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더라도 그저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안정을 얻는다.
사실 고리타분하다고 느낄만한... 좋은 운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인 철학, 혹은 만족에서 오는 불안의 해소, 그로 인해 느끼는 행복에서 비롯된다는 답이 아쉽게도 모든 이에게 발현되진 않는다는 점에서 그저 누군가에겐 겉치레로 들릴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답은 명확히 있다는 것을 이번 고찰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장황한 나의 고찰을 본 당신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유전자 성질을 통해 겹쳐진 수많은 갈림길에서 나의 글을 만났는지, 이를 통해 내가 제시한 좋은 운의 답을 체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 글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해서, 당신은 어느 갈림길로 갈까?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콩알만 한 두뇌로 좋은 운의 방향을 감히 계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운명은 세계에 맡기고, 나는 좋은 운이라는 이름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 물론, 또 새로운 상황을 만난 나라는 성향은 어느 방향으로 삶을 옮겨지게 할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