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인플레이션

행복은 너무 고물가가 되어버렸다.

by om maum

‘인플레이션’이란

통화량이 늘어나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혹시 ‘행복’에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SNS만 켜면 남들의 삶이 훤히 보이는 시대. 비교 속에서 행복 기준치는 자꾸만 높아지고 실제로 느끼는 행복은 줄어든다. 이 현상을 나는 ‘행복 인플레이션’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행복을 둘러싼 착각


서점에 가면 가장 눈에 잘 띄는 베스트셀러 칸에는 ‘행복’에 관한 책들이 쌓여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등을 다루는 수많은 책들이 “나를 읽으면 행복해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갖고 싶은 차를 사면 행복할 것 같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산다. 하지만 그것은 쾌락이지 행복은 아닐지도 모른다. 쾌락과 행복은 비슷한 듯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쾌락과 행복의 차이에 대해 고(故) 신해철 님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 하면 기분 좋은 게 일주일 가요.
연말에 상 받으면 3주쯤 가죠.
근데 녹음할 때 고생하고, 콘서트 할 때 고생하는 건 평생 가더라고요.

결과는 너무 짧아요. 과정이 더 길어요.
내가 행복하려면 과정이 재미있어야 해요.”


결국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이야기다. 뭔가를 하는 과정을 희생양 삼아 결과만을 좇는다면 현재는 불행해지고, 결과를 얻은 뒤에도 그 기쁨의 유효기간은 금세 끝나버린다. 이것이 쾌락이며, 은은하고 잔잔하게 코 끝을 스치는 기분 좋은 꽃 향기 같은 행복과는 다른 지점이다.


무제한의 시간과 돈


시간과 돈이 무제한으로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아마 지금 가지지 못한 좋은 차, 좋은 집, 값비싼 것들로 나를 채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잠깐의 기쁨이 지나면 또 다른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갈증은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목마름으로 다가올 것 같다. 그러다 올 초 무안공항 참사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아픔에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미약하지만 보탬이 되는 존재로서 역할을 다했을 때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동.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게 되는 순간. 그게 바로 행복이었다.

주위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이 질문을 던져봤다.
“시간과 돈이 무제한이라면, 무엇을 할래?”

대부분 비슷한 대답이었다. 원하는 걸 사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챙기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 걸음 더 물어봤다.

“그다음은? 그걸 다 가지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그러면 다들 멈칫했다.
“그다음은 잘 모르겠다.”
“아마 곧 재미없어지지 않을까?”
“행복할 것 같긴 한데…” 같은 자신 없는 대답들로 길을 잃어버렸다.


나만의 색깔을 찾는 일


고급 승용차, 넓은 아파트, 근사한 직함… 그것이 정말 나를 위한 걸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는 마음일까?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내 삶을 내 방식대로 꾸려갈 때 자존감이 자라난다. 세상의 중심을 ‘나’에게 두고, 내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 그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은 비슷한 색으로 덧칠되어 있다. 남들이 말하는 ‘괜찮아 보이는 삶’을 좇다 보면, 내가 가진 고유한 색은 유행의 색에 묻혀 사라지기 쉽다. 그래서 가끔은 틀리고 고생하더라도 부모님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각자가 가진 고유한 색을 드러내고, 서로 다른 색이 어우러질 때 세상은 더 다채로운 도화지가 될 것이라 믿는다. 나만의 색을 드러내고 타인의 색을 존중하며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 인플레이션을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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