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짐을 채워준 브런치

기대 없이 작게 시작한 일

by om maum

책을 읽다 가슴에 스친 문장, 순간순간 밀려온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스프링 노트에 악필로 끄적이기 시작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매일 쓴 것은 아니지만 꼭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는 펜을 들었다. 그러나 오랜 자취생활 동안 수 차례 이사를 하며 그 노트들을 잃어버렸다. 누군가가 그것을 주워 읽는다고 생각하면 하늘로 솟거나 땅속으로 꺼지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그곳에는 정말 나만의 공간이라 믿고 가감 없이 쓴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컴퓨터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잃어버릴 일 없는 나만의 가상공간에 감정을 저장하며 글쓰기는 내 삶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나만의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더니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려보라”는 제안을 해왔다. 브런치 스토리...? 자세히 검색해 보니 ‘내가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대학입시 원서를 제출하듯 신중하게 글을 쓰고 몇 번이고 퇴고한 후 작가 신청을 했다.

결과를 기다리던 며칠은 고3 시절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마음과 비슷했다. 그리고 드디어 기분 좋은 진동과 함께 휴대폰에 알림이 왔다. ‘브런치스토리 작가 승인.’ 그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정식 작가가 된 후, 글을 쓰는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혼자만의 기록이 아닌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하니 더 깊게 고민하고 더 진지하게 써 내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연재일에 맞춰 글을 쓰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세심해졌고 작은 것 하나도 크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과 느낌 속에서 글감을 찾고 써 내려가며 내 삶이 더 다채로워졌다. 특히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독자가 생겼을 때 그리고 댓글과 공감을 남겨주는 순간, 글로 소통한다는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말로는 전하지 못할 마음이 글로는 닿을 수 있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언젠가 내 글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기를.... 힘든 순간을 견디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내 주변으로도 퍼져 나갔다. 퇴직을 앞둔 직장 선배님께 브런치를 소개해드리자, ‘몽글몽글’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 또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친구에게 글쓰기를 권했더니 그는 ‘인묵’이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스스로에게는 치유를, 다른 이들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있다.


나 혼자 글을 쓰다가 이 경험이 주위로 퍼져서 이제 브런치 동료 작가들이 생겨났다. 글은 이렇게 사람을 연결시키고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나는 앞으로도 기승전결이 완벽한 소설이나 거창한 서사가 담긴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아닌 글을 통해 따뜻함을 나누는 작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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