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하는 삶

회피 대신 관조하기

by om maum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마주하기 싫은 사람,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온다. 그럴 때 우리가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다. 당장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무릎 쓰고 정면으로 돌파할 수도 있고, 그 상황과 감정이 두려워 슬며시 피할 수도 있다.


정면 돌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직면해야 하고, 당장의 손해와 불편이 불 보듯 뻔한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반대로 회피는 그 순간의 불편함을 덮어두는 선택이다그러면 당장은 편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는다. 가끔은 시간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의도한 해결이 아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는 기대 속에 회피를 반복한다면,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또 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불편한 상황과 감정을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늘 용감하게 정면 돌파만 하는 것이 정답일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타이밍이 있다. 무조건 빨리 끝내려고만 하면, 충분히 생각해 보기도 전에 쫓기듯 결정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지혜를 발휘할 틈이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지혜가 떠오를 때까지, 그리고 그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며 잠시‘관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관조는 겉으로 보기에는 회피와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문제 상황을 당장 마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관조는 분명히 다르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며, 내 감정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려는 태도이다. 그 거리를 두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안에 이미 들어 있는 해답의 실마리를 조금씩 찾아간다.


이렇게 한 번씩 문제 상황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때마다 내 안에는 작은 지혜의 데이터가 하나씩 쌓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지혜 저장소’ 용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주로 회피를 선택하게 되면 피하고 싶은 상황이 점점 더 많아진다. 회피가 나의 문제 해결 방식의 ‘기본값’이 되어 버리면,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본능처럼 등을 돌리고 도망치고 싶어질 것이다.


관조하기 위해 새처럼 위로 날아올라 한 번의 날갯짓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내려다보고, 또 한 번의 날갯짓으로 내 안의 지혜를 불러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이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부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아직 그 불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그 불성을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가 바로 ‘관조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지혜를 깨워내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서, 나와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 앞에서, 나의 기본값은 무엇인지 한 번쯤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누군가와 불편한 상황을 맞이하면 말을 아끼는 편이다. 예전에, 내 마음속 불편함이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내 의도보다 훨씬 더 거칠고 뾰족한 말이 되어 상대에게 박혀 버린 경험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도 내가 놀랐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기분이 상하고 불편할수록 오히려 입을 닫게 되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나도 모르게 실수로 상대를 깊게 상처 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태도가 어떤 사람에게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바로 해결하되, 때로는 관조의 태도로 한 걸음 물러나 지혜롭게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침묵을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마음을 관조하고 정리하기 위한 ‘호흡의 시간’으로 활용해보길 권장한다.
그렇게 관조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내 안의 불성을 닦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 어려움 앞에서 도망치지 않으면서도, 상대와 나를 함께 살리는 말을 건넬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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