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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Jan 10. 2023

엄마 밥

[100-10] 백일백장 글쓰기 9기


엄마가 만들어 준 밥은 영혼을 치료해 주는 Soul Food입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경북 영양에서 회사를 다니실 때였다. 엄마가 동생들 출산 직후 네 명의 아이 모두 키우기 힘들어서 제일 순한 나를 대구 할머니 집에 잠시 맡긴 적이 있었다. 너무 어릴 때라 얼마 동안 있었는지는도 모르겠다. 꽤 긴 시간이 지나서 막내 이모가 나를 다시 영양으로 데려다주었다. 아마 5살 전후였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한 나는 엄마가 계란, 간장, 참기름으로 비벼 주는 밥을 4~5그릇도 더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사건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친척 어른들이 나를 놀리는 소재가 되기도 했다.

'명아 쟈가 억수로 많이 먹는다.'라며 항상 놀리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배가 고파서 그렇게 먹은 것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5살 아이가 먹어야 얼마나 먹겠는가. 그동안 엄마와 떨어져 지난 시간이 많으니 말로 표현은 못 해도 사랑 못 받았던 시간에 대한 허기를 밥으로 보충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딸 마리아가 미국 대학에서 4년 유학을 했었다. 방학이 되어서 집에 오면 요구 사항이 무척 많다. 일단 오기 한 달 전부터 한국 가서 꼭 먹을 음식들 목록을 카톡으로 보내온다. 그중에는 외식이나 배달로 해결되는 품목도 있지만 내가 꼭 만들어 줘야 하는 음식들도 있다. 김치찜과 김밥이 대표 메뉴이다. 지난겨울에 왔을 때 먹을 한국 음식에 대한 부분 쓴 글을 보시면 웃음이 나올 것이다.



2022년 8월에는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 다시 보스턴으로 출국하게 되었다. 원래 엄마인 나는 같이 출국할 예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교 때 기숙사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 아파트를 임대해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케아 가구도 조립하고, 그릇도 사야 하고 할 일이 무척 많으니 누군가 도와주러 같이 가야만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내 비행기 표도 예매해서 같이 출국했다.


여행을 자주 못 다녔던 나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마리아 덕분에 작년에는 무려 3번이나 보스턴을 다녀오게 되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생겨서 신기했다.



홀 푸드 음료 코너, 보스턴 케임브리지 어느 길목



나의 주 목표는 마리아의 자취방 세팅을 도와주고 자취생활 중 먹을 음식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결국 비싼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에 가서 살림 투어를 하는 셈이었다. 홀푸드, H마트, 타겟, 트레이더조스 등등을 하루에 두세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식재료와 기타 필요한 생필품을 바리바리 샀다. 그런데도 부족한 게 있어서 몇몇 품목은 아마존에 배달도 시켰다.







딸의 아파트에서 본 석양과 찰스강


물론 한국에서도 30리터 큰 가방에는 각종 양념류와 김치, 김, 기타 먹을거리 등이었다. 나의 옷이나 내 소지품은 최소한으로 들고 갔었다. 처음엔 딸이 너무 많이 가져간다고 좀 빼자고 하는 것을 엄마 마음에는 꾸역꾸역 하나라도 더 집어넣어서 바리바리 들고 갔었다. 그 결정은 결국 잘한 결정이었다. 마리아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그 모든 것을 잘 사용하고 잘 먹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재료들이 더 맛있는 경우도 있지만, 고기는 미국 고기가 정말 맛있고 신선하고 가격도 한국의 반값이었다. 미국 삼겹살은 덩어리 상태로 파는데 우리는 사진을 보여주면 한국 식으로 썰어달라 해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쌈장과 같이 쌈을 먹어야 하는데 한국 상추가 미국 마트에는 덜 보여서 로메인 상추나 버터 헤드를 먹으니 비슷한 식감이 들었다.


쌀도 처음엔 너무 길쭉한 쌀을 잘못 사서 나중에 한국 쌀과 비슷한 맛의 쌀로 다시 구입해서 맛있게 해먹었다. 한국에서도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을 사용하는 데 처음엔 그런 것들이 없어서 부족한 솜씨에 냄비밥을 했었다. 한 번은 태워먹어서 냄비 그을음 떼느라 혼났다. 살림 덜한 티가 팍팍 났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마리아가 먹을 음식을 이것저것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비닐 지퍼백에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사진으로 보니 내가 생각해도 엄마의 정성은 대단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이 살림 투어를 하고 한국에 오니 잘 안 빠지는 체중이 무려 2킬로그램이나 내려갔었다.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마리아 먹이려고 만들었구나 싶었다.







김치전, 새우볶음밥, 불고기
냉장고 가득 일용할 식량들
미국 재료로 만든 김밥, 한국에서 재료 사 가야 더 맛있을 듯


잘 못하는데 해본 냄비밥, 부침개


미역국과 신라면 계란말이 만찬



나의 엄마 문인순 여사는 음식 솜씨가 정말 좋으셨다. 그리고 손도 컸다. 항상 음식을 만들면 앞집 뒷집 길가는 거지부터 오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는 분이셨다. 우리가 대구 엄마 집에 갈 때도 다 못 먹고 올 정도로 많은 음식들을 해두고 우리를 기다리셨다. 남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다 싸 들고 올라오곤 했었다.

엄마는 내가 마흔도 되기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일 년 지나서 엄마가 그 전해 만들어 두고 가신 김치를 꺼내 먹으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세상 모든 자녀들에게 엄마가 만들어 주는 밥은 몸과 영혼을 치료해 주는 최고의 영약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신기술이 생긴다고 해도 우리 모두는 엄마 밥을 먹고 쑥쑥 자라 어른이 되고 한 인간으로 제 몫을 하게 된다.

시험 끝나고 집으로 왔는데 엄마가 해준 맛난 밥 냄새에 시험 못 본 거와 힘든 것은 잊게 된다. 사회생활 중 힘든 것도 엄마가 해준 밥을 먹다 보면 다 그럴 수 있지 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없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 밥을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찬밥에 물 말아서 김치만 먹어도 맛있다고 말해주는 아이들이 있으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어떤 때는 밥하기가 힘들고 귀찮을 때도 많지만, 2022년에 마리아에게 엄마 밥을 해주면서 이게 찐 사랑이구나라고 깨닫게 된 후로 집에서 자주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늘 바쁜 엄마로 살면서 음식 만들기에 나태했었던 나였다. 몸 건강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의 영혼도 행복하도록 앞으로도 엄마 밥 만들기를 열심히 해야겠다.



아~ 나도 엄마 밥, 울 엄마 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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