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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Jan 11. 2023

일침즉효(一針卽效)

[100-11] 백일백장 글쓰기 9기


일침즉효(一針卽效) 침 한대로 그 즉시 치료 효과를 보는 것


한의사의 삶을 산 지 30년이 되었다. 운 좋게도 나는 거의 쉴 틈이 없이 진료를 했었다. 한의사로 살면서 인생을 많은 배운 셈이다. 물론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을 힘들 때 아주 가끔 해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한의사인 것이 무척 행복하고 감사하다.


30년간 경험담을 적으려면 100일이 모자라겠지만 나의 강점은 글쓰기 보다 말하기를 더 잘하는 편이라, 기회가 되면 말하는 장소에서 이야기해 드리겠다.


나의 할아버지가 한의사였다. 아버지가 고등학생일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나는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한의사가 될 때 할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다면서 딱 두 가지를 신신당부하셨다.


첫째, 자기가 못 고치는 환자들은 더 잘 고치는 사람에게 보내야 한다. 괜히 고쳐보려다가 더 그분들 힘들게 한다.

둘째, 의사는 평생 적어도 세 명의 환자를 죽게 할 수 있다. 아무리 네가 잘 치료한다고 해도 실패하는 경우는 있기 때문이다. 그 실패를 통해서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


나는 이 할아버지의 말씀을 항상 명심 명심했었다. 내 능력 밖의 질환을 가지고 오신 분들은 당연히 더 큰 의료기관이나 더 잘 고치는 분들에게 보내드렸다. 그러면 그분들은 나를 절대 원망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보내주고 추천해 줘서 더 잘 고쳤다고 감사해 하신다.


평생 환자 세명을 죽게 해야 명의가 된다는 말은 20대에 처음 들었을 때는 전혀 와닿지 않고 섬찟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은 그게 자신 있다고 치료한 환자분들이 잘 고쳐지지 않고 실패할 때 진짜 공부가 돼서 더 좋은 의사로 거듭 태어나게 됨을 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어린 시절엔 그 말이 딴 나라 이야기 같았다.


이 두 가지 말씀 덕분에 그래도 무탈하게 30년 한의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 말씀 듣고 잘못된 경우는 없다는 것, 진짜 맞는 말이다.


이제 연차가 좀 되었으니 나도 오시는 환자분들에게 작은 조언 하나 드리고 싶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와 급한 성격은 전 세계가 다 알 것이다. 질병 치료에 있어서도 똑같다. 대부분 환자들이 처음 한의원에 오시면 첫 마디가 "빨리 고쳐주세요."이다. 열 분 오시면 아홉 분 이상 이 말씀을 하신다.


각자의 병이 다 다르고, 병의 원인도 다르기 때문에 빨리 낫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3,4일만 지나도 낫지 않으면 투덜거리신다. 그리고 무조건 빨리 낫게 해 달라고 재촉을 하신다. 한의사인 나도 환자분들 정말 빨리 낫게 해드리고 싶다. 그러나 모두 내 맘같이 되기는 어렵지 않은가.


물론 최근에는 삶의 여유로움이 증가되고 마음의 중요성을 아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 잘 고쳐주세요.","아픈지 오래돼서 시간이 걸리겠지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간혹 계신다. 가벼운 질환으로 침 치료 오셨어도 매번 내가 침 치료를 다하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꽤 많으시다. 그러면 의사 입장에서는 이런 분들에게 당연히 더 좋은 마음이 생긴다.


예를 들면 본인 생활습관이나 식생활을 엉망으로 해서 병이 생겼는데, 자기 자신은 변화를 1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약에 침에 의지해서 빨리 낫게 해달라는 분들을 만나면 대략난감이다. 잠시 치료할 때는 좋아지는 듯하다가, 치료를 멈추면 반드시 그 병은 다시 악화되기 때문이다.


나도 나이가 드니 환자의 입장이 되어 병원을 가는 경우가 있다. 그때 나는 꼭 의사 선생님들에게 "잘 부탁드립니다. 잘 고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당연히 자주 한다.

"빨리 나으셔야 되는데요."라고 의사분들이 말하면 "천천히라도 분명히 나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상대 의사분들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사실 나이가 들어 생긴 모든 만성병은 습관병이다. 내 습관 못 고쳐서 생긴 병인데 일침 즉효, 일도 쾌차를 바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큰 욕심일 수도 있다.


이제 병원에 가면 "빨리 고쳐주세요." ,"한 번에 다 낫게 해주세요."보다는 "잘 치료해 주세요."," 잘 고쳐주세요."라고 말씀하시면 어떨까 싶다. 좋은 의사를 만나고 싶다면 내가 먼저 좋은 환자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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