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by 수기


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가 너무 멀어 첫 차를 타고 등교했었다.

워낙 시골이라 하루에 버스가 4대 다녔는데, 첫 차는 새벽 6시에 두 번째 차는 9시에 있었다. 9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면 이미 1교시가 시작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중학교 3년 동안 첫차를 타고 등교했었다.

뭐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이기도 하고, 살던 곳은 경제발전도 타 지역보다 더디게 흘러갔으므로 동네에 자동차가 있는 집이 드물었고, 설사 있다 해도 한창 바쁜 농촌에서 그 차로 자식들을 등교시켜주는 부모는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다들 그 버스를 타고 등. 하교를 했다.

그래서 평소의 첫차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9할이고 볼일을 보러 가는 어르신들은 겨우 몇 분 정도만이 있었을 뿐인데, 한 번씩 크게 장이 서는 날에는 동네의 어르신들도 장바구니를 들고 다들 첫 차에 올랐다.


차에 탄 어르신들이 만나는 이웃마을의 어르신들은 모두 친인척이거나, 이웃의 친인척들이라 일단 만나면 안부를 묻고 농사일의 진도를 묻고, 자식 자랑으로 끝없는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어른들이 삼촌이 되고 작은엄마가 되는 이런 상황들이 어릴 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커서 도시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장면들이 한 번씩은 그리워지곤 했다.


며칠 전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 옆에 아주머니 두 분이 큰 쇼핑백을 무릎 위에 살포시 얹어놓고 가고 계셨는데 갑자기 건너편에 서계시던 아주머니 한 분을 손으로 콕콕 찔렀다.

그러면서 본인들 쪽으로 와서 서계시라며 친절히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3은 자연스럽게 "금방 내리세요~? 호호호~" 하면서 돌아서서 아주머니 두 분의 앞에 섰다.

그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나 역시도 아주머니 두 분이 금방 내릴 거라 아주머니3을 부른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주머니3은 모피코트를 입고 계셨는데, 그 모피코트를 손으로 가리키며 자기들이 오늘 모피코트를 사서 오는 길인데 입으신 거랑 비슷한 것 같다며 얼마를 주고 사셨는지, 착용감은 어떤지 등을 물어보셨다.


너무 생경스러운 느낌이었다. 아니 생판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외국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옷 너무 예뻐요~ 가방 너무 멋져요~ 이런 식으로 코멘트를 하고 내 갈길을 가는걸 한 번씩 목격하기는 했지만)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얼마를 주고 샀느냐? 언제 샀느냐? 이런 걸 막 물어볼 수 있지?

근데, 더 놀라운 건 아주머니3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호호호 웃으면서 다 알려주셨다.

5년이 넘었고 4장을 넘게 주고 샀고, 그 정도는 써야 하는 거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얘기를 듣던 아주머니 두 분은 "어머 세상에 5년이 넘었는데도 너무 새것처럼 좋다~" 라며 칭찬을 아낄 줄 몰랐고, 갑자기 본인들의 쇼핑백에서 모피를 꺼내서 이건 어떠냐며 그 자리에서 입어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3은 그냥 모피를 입고 있었지 모피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근데, 또 아주머니3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사셨다", "가격 대비 좋은 걸로 사셨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겨울에 모피는 교복처럼 입는 것이고, 이거 없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살포시 남겨 놓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주머니들은 모두 내렸고, 그 옆에 덩그러니 모피도 없이 앉아있던 나는 너무 추워지는 느낌이었다.

병원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자식 이야기까지 나누던 우리 엄마가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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