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근을 하게 됐다.

by 수기


하루의 시작이라는 글을 써서 올리자마자

의도치 않게 일을 하게 됐다.

일을 하지 않는 백수의 삶이 얼마나 한가하고 잉여로운지 아름답게 미화해서 적어나가고 싶었지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와 또다시 출근이라는 걸 하게 됐다.


출근,

출근은 이름도 이상한 느낌이다.

일터로 근무하러 나간다.

근무도 싫은데 일터는 더 싫은 느낌. 뭐 그런 느낌이다.


과거 쉬지 않고 17년 정도의 시간 동안 일을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방전이 된 것처럼 미치도록 퇴사가 하고 싶었다. 물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치도록 퇴사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면서 살아가지만,

나는 '그만큼 눌렀으면 이제는 됐다'라는 생각이 너무 커져 과감하게는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서를 내고 사무실을 내 발로 기어 나왔더니 실업급여도 안 나왔다. 젠장.

내가 17년 동안 고용보험료로 낸 돈만 하더라도 몇 달치 월급은 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뭐 그래도 이미 질러놓은 게 있어서 퇴사라는 걸 했다.


퇴사를 하고 난 후의 삶은 정말 잉여력 포텐이 터지는 순간들이었다.

제주도에서 남편과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전에 산책 삼아 동네 뒷산을 오르다가 벌건 대낮에 홀딱 벗은 변태를 만나기도 했고(그 뒤로 뒷산 산책을 관뒀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나도 뭐라도 해보겠다는 둥 영어책을 들고 가서 앉아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집 근처 새로 생긴 카페들을 투어 해보기도 했고

아직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점심시간에 찾아가서 밥과 맥주를 얻어먹는 호사도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놀았다.

이제 그만 놀 때가 된 것이다.


내가 다시 또 얼마나 쉬지 않고 출근이라는 걸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일단은,

다시 출근이라는 걸 하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하루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