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성큼,
케이지에서 고양이가 나왔다.
두리번거리며 긴장된 듯한 모습과는 상반되게 온 집안을 활개 치고 다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 숨지 않고 오히려 처음 보는 내게 다가와 냄새를 맡고 몸을 비비며 호감을 표시했다.
고양이의 이름은 처음 보자마자 너무 순둥순둥이고 해서 그냥 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단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이 아이를 어떻게 해줘야 편안할까? 즐거울까? 행복할까? 전전긍긍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양이의 경우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중요했다. 거기에서 느끼는 안정감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던 개냥이라는 말이 정말 잘 맞는 아이였다. 일단 사람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봤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면 (강아지도 아닌데) 현관 앞에 마중을 나와있고,
내가 소파에 앉아있으면 항상 그 옆에 와서 자리를 잡고 눕는다.
식탁에 앉으면 분명히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는데 어느새 다가와선 내 옆자리로 올라오고,
화장실도 따라 들어와 같이 있는다. 물론 샤워기를 트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
집에 방문하는 낯선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 처음 봤음에도 부비부비 한다.
남편에게 농담으로 '우리 양이는 모든 사람을 다 너무 좋아해서 어디 딴 데다 맡길 수 없다고. 우리를 금방 잊어버릴 거야~'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 정도로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
도도하고 사람의 눈을 피해서 야행성으로 행동하는 고양잇과는 확실히 아니었다.
양이를 입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고 더 이상은 병원 방문을 미룰 수 없어 차에 태우고 첫 외출을 했다.
처음엔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서 몸상태를 체크하고 싶었는데, 인터넷 카페에서 본글에 의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면 삐져서 한동안 옆에 오지 않는다는 그 말이 무서워 일주일 정도 친해지는 시간을 두었다.
집 안에서 키우던 고양이었다지만 현재의 몸 상태가 어떤지는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하는 상황이므로 양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는데, 양이가 차 안에서 엄청나게 슬픈 눈을 하며 계속해서 울어댔다.
양이는 이상하게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아이였다. 울고 싶어도 못 우는 것 같아서 혹시 성대 수술을 한건 아닌가? 궁금했는데 의사 선생님 말로는 성격 탓이라고 했다. 너무 순하고 착한 아이라서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그런 아이가 병원으로 가던 차 안에서는 정말 쉬지 않고 울어댔다.
일주일 동안 전혀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그게 차를 타서 무서워서 우나? 케이지라는 공간이 너무 답답한 건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두 번째 방문부터는 병원을 가든지 말든지 너무 편안하게 케이지 안에서 잠을 자는 양이를 보니, 일주일 전자 신을 차에 태우고 와서 낯선 환경에 에 남겨졌던 순간들이 기억이 나서 그렇게 울었던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이의 입장에서는 일주일 전과 똑같았으니까. 차에 태워져 낯선 곳에 내려진 후 본인을 데리고 왔던 사람은 떠나버리고 혼자 남는 그런 상황.
동물의 입양 과정에서 입양을 했다가 파양을 할 경우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때 처음 느꼈었던 것 같다. 뭘 알까? 싶었는데 그들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흘러 양이와 함께한 시간도 다섯 달이 넘어가고 있다.
이젠 무릎 위에 올라와서 잠을 자기도 하고, 빗질을 하면 싫다는 표시로 내 손을 잡아서 그만하라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잘 울지 않았던 처음과 다르게 이젠 수다쟁이처럼 많은 소리를 내며 우리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러나 아직 꾹꾹이는 해주지 않고, 우리에게 서운한 점이 생겼다고 해서 삐지지도 않는다.
처음 양이가 무릎 위에 올라왔을 때 너무 좋아서 임보자 분에게 '드디어 양이가 무릎에 올라와서 앉았어요!' 라고 기쁨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제야 마음을 여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꾹꾹이는 그다음이라는 얘기도 함께.
양이가 내 무릎 위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무릎에 올라오지 않는 고양이도 있겠지~ 뭐' 이렇게 생각했었다.
'왜 양이는 자기 방석만 꾹꾹이를 해줄까? 사람에겐 할 줄 모르나?'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양이는 아직 우리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 달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양이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한 가정에서 반려동물로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그들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양이를 문 밖에다 유기했다. 양이는 그 닫힌 문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다시 그 문이 열리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 몇 시간을 버텼겠지...
양이가 다시 우리에게 모든 마음을 다 열 수 있을 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집사의 길을 잘 걸어가면 언젠가는 양이도 우리를 막대해주는 그런 날이 오겠지? 사납게 굴고 삐지고 떼도 쓰고 하는 그런 모습도 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