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02월 셋째주
이 집에 이사 온지 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에 살다가 경기도로 오니 가장 힘든 건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로 재택 근무를 하고, 일주일에 한 두 번 사무실에 나가므로, 하루 이틀 정도는 참을 만 하다.
그리고 지하철에 앉아서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기도 한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덜컹거림은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지하철=숙면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지하철속에서 보내야 하니 힘들기는 하다. 심지어 이번달부터 새롭게 시작한 일은 집에서 근무지까지 무려 편도 2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너무 멀어서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그 일을 덜컥 잡았는데, 하루에 왕복 4시간을 길에다 버리고 있다 보니 시간도 아깝지만 체력이 말도 못하게 떨어지는게 눈에 보인다.
그래도 5개월이라는 다소 짧은 기간의 일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우리 두 사람은 평일을 조금 더 얌전히 보내고 있다.
사실, 평일 저녁에 퇴근후에 마시는 맥주가 얼마나 맛이 있는가?
아침은 간단하게 주스를 마시고, 점심엔 포만감이 없는 도시락을 먹고, 저녁엔 운동으로 개운하게 땀을 뺀 후 집으로 돌아와서 반주와 함께 먹는 저녁밥상의 매력에 빠져 우리는 1년 가까운 생활을 그러한 패턴을 유지하며 지내왔다.
그러나 새로운 프로젝트와 함께 호시절은 끝나고,
약간의 초과근무 후 퇴근길에 오르면 아무리 빨리 집에 도착해도 밤 10시가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의 저녁은 조금 얌전해 졌다.
퇴근 후엔 이렇다 하는 거 없이 몇 마디를 나누고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생활을 이어온 지도 벌써 한달이다.
출근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30분정도 빨라졌다.
이 집에서 줄곧 기상시간이었던 새벽 6시도, 여름을 제외하곤 해가 뜨지 않는 어스름인데, 5시 반의 시간은 또 다른 적막감을 선사 해 준다.
남편의 기상과 출근이 빨라진 만큼 나 역시도 조금 더 부지런을 떨며 아침을 시작해야 하기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엔 남편을 데려 다 준 후, 헬스장에 들러 그곳에서 아침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헬스장은 문을 닫고 열기를 반복하고
그러는 사이 아침운동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린 관계로(사실 운동을 계속 해오던 시절에도 매일 아침 헬스장을 갈까? 말까? 생각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매일매일 하고 있었지만) 요즘은 아침시간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됐다.
남편을 역까지 데려 다 준 후, 집으로 돌아와도 동이 트지 않은 시간이다.
이제 조만간 일출시간이 훨씬 빨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짙은 푸른빛이 감도는 이 새벽의 느낌이 너무 좋다.
집으로 들어와 어제 저녁부터 쳐 놓았던 무거운 커튼을 모두 열고, 쨍하게 밝은 빛을 내는 조명은 모두 소등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튼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많은 양의 원두를 갈아 진한 커피 한잔을 내려 식탁의자에 앉는다.
아직은 푸른빛이 감도는 바깥 세상을 바라보며, 동네가 깨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마당을 열심히 쓰는 뒷집의 아버님을 시작으로, 한껏 멋진 작업복을 입고 개 두 마리를 이끌고 아침 산책을 다녀오는 아랫집 아저씨, 아주머니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을 시간이지만 문을 열고 서로 엉키어 마당을 뛰기 시작하는 개 세 마리가 돋보이는 건너편 집, 장사를 하느라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여 동네에서 가장 늦게 조용히 아침을 시작하는 옆 집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다른 아침을 맞이한다.
별다를 거 없는 풍경이지만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은 쓸데없이 너무 맛있어, 빈속을 더욱 쓰라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