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3월 첫째주
항상 꽃을 가까이에 두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지냈다.
꽃을 너무 좋아해서 내 남은 삶은 꽃을 업으로 삼아볼까? 고민도 했지만, 역시나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았을 때 좋은 거라 생각하며 가까이에 두는 삶을 택했다.
주택으로 이사를 결정하면서 많은 시간을 마당에 심으면 좋을 꽃나무들을 궁리하며 지냈다.
무슨 꽃이 어울리는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사철 꽃이 피어 있는 마당을 갖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은 있었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온기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수선화처럼, 수선화가 떠나간 자리를 매혹적인 향으로 수선화의 흔적 따위는 모두 지워버릴 라일락처럼,
그리고 언제 심었는지도 잊었는데 때가 되면 다시금 자신의 존재를 뿜어내며 솟아나는 백합처럼,
이제 꽃의 계절은 끝났다 생각했지만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듯 큰 망울을 터트리는 작약과 수국처럼,
찬바람이 시작되고, 황량해진 자리를 강렬한 붉은 빛으로 매워주는 동백처럼,
이런 형태를 생각하며 이사 초반에 이런저런 꽃들을 많이 심었다.
그런 의미로 일년생은 안되고 다년생으로 한번 심으면 다음 해 잊지도 않고 찾아와 꽃망울을 터트려 주기를 바랐다.
뭐 이론상으로는 어려울 게 없어 보이는 로망이었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목이 마르지 않게 물만 잘 주면 어렵지 않게 나를 위한 꽃망울을 터트려 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과 다르게 식물들은 시름시름 앓아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남편은 내가 과한 사랑을 주어서 애들이 아픈거라 했다. 그런건가? 식물도 살아있는 생명이라 자꾸 예쁘다, 사랑한다 말하고 아껴주면 더욱 더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결국 한도치가 있는 것일까?
나는 과연 너무 많은 사랑을 준 것일까?
올 겨울엔 꽃을 피울 거라 기대하며 작년 봄에 심었던 동백은
갑자기 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꽃한송이 피우지 못 하고 삶을 마감하기 직전이다. 분명 가을까지는 녹색잎을 반짝이며 한송이의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이었는데
정말 한순간에 갑자기 노랗게 변해버렸다.
이 억울함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오죽은 또 어떠한가.
작년 봄, 울타리 대용으로 화분에 가지런히 심어 놓기 위하여 엄청난 거금을 들여 오죽을 몇 그루 구매했다. 봄에 심었을 때는 엄청난 성장속도를 보여줬다.
갑자기 죽순이 마구마구 솟아 나오더니 기존에 있던 줄기들을 제치고 엄청난 성장을 보이며 하루가 다르게 푸르게 자라더니, 추운 겨울에 서리한번 맞더니 급속도로 말라가기 시작했다.
대나무는 원래 밖에서 자라기 때문에 추위에 강한 거 아니었나? 물을 자주 줘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추울 때 실내에 들여놔야 한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동네 주민분들이 한번씩 오죽이의 안부를 내게 묻는다.
저렇게 잎이 노랗게 있다가 봄 되면 다시 푸른 새싹이 올라오는 거냐고.
나도 대나무는 처음이라 이 황망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울고 싶은 아이에게 빰을 때리는 격으로 자꾸만 오죽이가 올 봄에 새싹을 틔우는 건지 아닌 건지를 내게 물어온다.
다들 저보다 궁금하시겠냐 구요! 저는 남편이 혀를 차면서 오죽 화분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한다 구요. 정말 어디 하소연 할곳이 없다.
비싼 묘목의 얘기가 나온김에,
작년 봄에 야심차게 심은 작약이 있다.
작약을 심어보자! 하고 찾아보니 종류가 정말 어마어마 다양한데
우와 예쁘다~ 싶은 아이들은 또 가격이 비싸다. 정말 천차만별이다.
많이 심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한 그루의 묘목을 사서 심었는데, 분명히 물도 잘 주고 사랑도 주고, 심을때는 흙도 비싼 흙으로 사와서 같이 심어줬는데
이상하게 그 옆의 수국만이 꽃을 피웠다.
작약은 잎파리 몇 개 만을 보여주더니, 역시나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텃밭의 꽃나무들이 단체로 내게 단풍을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동백도, 작약도 노랗게 물들어가는 그 와중에
블루베리 한그루도 죽어 나갔다.
나에게 열매를 하나도 주지 않고, 그냥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내가 주는 사랑은 과연 식물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도록 큰 것일까?
그렇다면 조금 줄일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제 또 다시 봄이 찾아오고, 나의 작은 마당도 세번째의 봄을 맞게 된다.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마음에 드는 꽃을 하나씩 하나씩 심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꽃나무가 늘어나는 마당을 갖고 싶었기에, 매년 봄이 되면 올해는 무슨 꽃을 새롭게 심을까?가 나의 고민이자 설레임이다.
동네에 노부부가 농사짓는 포도 과수원이 있는데, 두 분 모두 큰 과수원을 하기엔 힘에 붙여 농사양을 좀 줄여야겠다며 포도나무를 분양했다. 동네 몇 집이 포도나무를 사러 간다기에 우리도 덩달아 따라가서 두 그루를 분양 받아 마당 한켠에 심어줬다.
갑자기 동네가 포도마을이 된 듯 집집마다 포도 나무가 마당 한켠에 자리잡았는데, 나 혼자서만 포도나무 마저 죽이게 될까 굉장히 두렵다.
그래서 이번엔 적당히 사랑하기로 했다. 마당을 지날때마다 말을 걸며 잘 자라고 있니? 라고 묻는 이상한 버릇도 고치기로 했다.
심지어 포도나무는 물도 주지 말고, 거름도 주지 말고, 농약도 하지 말라고 해서 정말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치며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일단은 우리집으로 온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묘목값보다 비싼 지지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올 여름이 되면 푸른잎들이 우거지며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겠지? 올 봄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설레임이 더욱 증폭될 것 같다.
어릴때는 자연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몰랐다.
주변은 항상 푸르렀고, 그 푸른 대지에서 돋아나는 생명들은 우리에게 귀한 것들을 항상 선사했다. 그것은 식탁위로 올라오기도 했고, 눈으로 담기만 해도 벅차게 아름다운 존재일때도 있었다.
때가 되면 예쁜 꽃과 과실로 돌려주기 위한 그들의 수고를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는데, 콘크리트 바닥과 매캐한 공기 속, 태양도 바람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곳에서 지내다 보니
그토록 당연하다 느꼈던 것이 실은 엄청나게 위대하고 소중한 것이구나. 라는 걸 매일매일 깨우치며 지냈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자연과 조금 더 가까이 지내자 하여 이곳에서 조금 고된 삶을 살고 있지만, 이 선택이 나쁘지는 않다라는걸 매일매일 변해가는 작은 마당의 색깔을 보며 느낀다.
봄이오면 들에 나가 쑥을 뜯고, 냉이를 캐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을 열면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꽃향기가 사시사철 전해지는 집을 갖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꽃시장에 들러 새로운 묘목을 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