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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Feb 09. 2023

만두 포에버






    시트지가 벗겨진 하부장 문짝, 오래된 신문지, 순후추, 말라붙은 기름, 온수 방향이 반대였던 싱크대 수도꼭지, 믹스커피, 덩어리 설탕과 프리마, 싸구려 빨랫비누, 고무대야, 플라스틱 바가지, 깨진 주황색 타일, 비 오는 날 달그락달그락 소리 나던 새시, 그 뒤에 붙어있던 새끼 개구리, 통돌이 세탁기, 유리컵 속 틀니, 해진 때수건, 낡은 트럭, 나뭇가지, 똥개 세 마리, 고양이 두 마리


    가끔 혼자서 시골에 가는 꿈을 꾼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포천 깊숙한 곳 이름 모를 산 밑에 사셨다. 나는 두 분과 아주 친하지는 않았기에 그분들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 나를 예뻐하셨지만 묘하게 어색함이 느껴지던 사람들이었다. 심리적 거리감 때문이었는지 엄마 아빠가 나를 시골에 두고 서울에 올라가 버리는 꿈을 자주 꿨다. 시골집까지 가는 길이 워낙 험했던 탓도 있다. 도착하기 전 마지막 10분 정도는 가로등이 없는 논과 뒷산 사잇길을 내리 걸어야 했는데 그 길이 너무도 으슥해서 혼자서는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다. 홀로 그 길을 걷는다는 상상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

    이제는 철거된 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가끔 내 꿈에 나오는 그곳은 여전히 선명하다. 꿈속에서 나는 더듬더듬 시골집을 찾아 계속 걷는다. 오래된 마을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내려가 가로등 없는 길을 지난다. 멀리서부터 뽀얗게 밤을 적시는 불빛이 어른거린다. 언제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곳에 있다.


    할머니와의 대화는 단 하나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이거 네 거야?”

    “아니요, 제 거요.”

    “그러니까, 네 거야?”

    “아뇨, 제 거라니깐요”


    할머니는 ‘네’와 ‘내’를 똑같이 ‘내’로 발음하셨다.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했던 마음과, 처음으로 둘만 남겨져 어색했던 마음 때문인지 이 대화가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반면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많다. 할아버지는 장난기가 많았고 귀가 왕왕 울릴 정도로 목소리가 컸으며 발가락으로 나를 꼬집어 멍들게 할 정도로 온몸에 힘이 넘치셨다.

    할머니와의 추억은 대부분 음식에 남아있다. 콩이 둥둥 떠다니던 된장찌개, 고기가 가득 들어갔지만 말갔던 김치찌개, 후추를 잔뜩 뿌린 사골국, 두부가 잔뜩 들어간 왕만두. 할머니의 음식에서는 항상 비슷한 향이 났다. 특이한 향신료를 넣은 것도 아닌데 모든 음식에 향긋하면서 큼큼한 향이 배어 나왔다. 지금도 식당에서 비슷한 향을 맡을 때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어, 이거 할머니가 해준 맛이랑 비슷한데. 하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레 기억 속에서 시골집과 할아버지, 어렸던 사촌 오빠들이 그물망에 걸린 물고기처럼 차례로 떠오른다. 그런데 할머니의 얼굴만큼은 언제부터인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자라는 동안 할머니의 얼굴은 먼지 쌓인 유리처럼 희뿌옇게 변하다가, 어느 할머니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뽀글 머리 실루엣만 남게 돼버렸다.

    할머니는 언제나 바빴다. 떡을 찌고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고, 메주를 빚고 만두도 빚고 김치를 담그고 팥죽을 쑤셨다. 음식을 하지 않을 때면 밭에 나가 계셨다. 식사 때는 대부분 물에 만 밥에 김치를 곁들여 후루룩 잡수셨고 곧바로 고추나 시래기가 잘 마르고 있는지 부랴부랴 확인하러 가셨다. 남는 시간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돌보셨다. 할머니는 진정한 ‘갓생러’였다. 나는 조선시대 종갓집 맏며느리의 일 년 루틴을 연봉으로 환산한다면 얼마가 나올지 종종 궁금한데, 할머니를 생각하면 궁금증이 더욱 절실해진다. 음식을 할 때 보이는 매끄럽고 효율적인 동선, 한 해의 해야 할 일을 적재적소에 수행하는 훈련된 감각과 멀티 플레이 능력! 이런 고급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환산되지 않는다니,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내가 과연 그 노동의 산물을 공짜로 취할 자격이나 됐을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할머니가 밥상에 앉기 전에는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어린이였던 나는 할머니가 음식을 할 때 잔일을 하며 도왔다. 숟가락을 놓거나 반찬을 꺼내는 일이 주였지만 명절이나 김장철에는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특히 만두 빚는 일이 가장 좋았다. 만두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만두를 만드는 방식도 좋아했다. 온 가족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자르고, 밀고, 빚는다. 앞이나 뒤가 아니라 옆을 보고, 서로 손을 바꿔가며 수다를 떨다 보면 귀여운 만두가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각자 빚은 만두 모양을 보고 깔깔 웃는 것도 좋았다. 이거 봐라, 나뭇잎 만두다. 돼지 만두다. 이건 딱 봐도 네 거다 하면서 말이다. 남은 밀가루 반죽으로는 수제비를 해 먹었다. 각자 한 덩이씩 잡고 뜯어서 냄비에 퐁당퐁당 밀가루 반죽을 던지고 기다리면 곧 냄비에 하나둘 반죽이 떠올랐다. 국자로 몇 번 휘휘 저어 냄비 속를 둥실 떠다니는 반죽을 보고 있으면 그득한 반죽만큼 마음도 부풀어 올랐다. 잘 익은 수제비를 국그릇에 담아낼 때 후드득 떨어지는 모양도 귀여웠다. 만두의 모든 순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만두 생각이 최근 들어 많이 났던 이유는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일까. 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사람이 싫다. 이제는 흐릿한 누군가의 맹목적인 정성과 사랑이 그리워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배가 고팠을지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간도 많이 남고 명절도 다가오는데 마침 만두가 너무 먹고 싶었으니 언니와 함께 만두를 빚기로 했다.


    할머니의 레시피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찾아보니 개성만두 레시피와 비슷했다. 사실 개성에 가건 평양에 가건 집집마다 레시피는 다르다. 내가 넣고 싶은 재료를 넣고 맛있게 쪄내면 그게 한 사람의 고유한 만두가 되는 거다. 그래서 참고만 하고 느낌대로 재료를 넣었다. 먼저 다진 돼지고기 1200그램에 숙주, 양파, 두부, 부추, 당면을 대략 두 주먹씩 넣었다. 감칠맛을 더하려면 닭고기를 같이 넣으면 좋을 텐데 다진 닭고기가 없기에 그냥 돼지고기만 두 팩을 샀다. 여기에 계란 3알을 풀고, 마늘 7알 정도와 생강 한 덩이를 갈아 넣었다. 밑간은 순후추와 맛술, 소금, 간장으로 했다. 각각 두 숟가락 정도 들어갔다. 야채는 처음부터 함께 버무리면 풋내가 올라오기 때문에 고기와 두부에 먼저 간을 하고 뒤이어 야채를 고슬고슬 섞어주면 좋다. 이렇게 해서 만두가 총 100개 정도 나왔다.

    솔직히 조금은 정석대로 만들 걸 그랬다. 야채를 더 많이 넣었어야 했다. 중간에 간을 다시 하느라 너무 반죽을 치댄 것도 있고, 당면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만두소가 조금 퍽퍽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할머니의 촉촉한 만두소를 기대하고 만두를 빚었던 나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찹쌀 만두피를 사면 좋았을 텐데, 야채를 더 넣었으면 150개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도 남는 데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언니를 구박해 가며 만두를 빚었기에 영 기분이 찜찜했다. 내가 생각했던 건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화목한 가족의 이미지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만두를 만들면서 할머니의 비법 아닌 비법이 뭔지 대충 알게 됐다. 생강이다. 우리 집은 요리할 때 생강을 거의 쓰지 않아서 생강 향에 익숙한 편이 아니다. 이번에는 돼지고기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잡내를 잡을 요량으로 조금 넣었는데 양 조절을 실패했는지 생각보다 생강 향이 두드러졌다. 만두소를 씹고 있으면 코 뒤끝으로 마늘과는 다르게 뾰족하고 알싸한 향이 큼큼하게 올라왔다. 딱 할머니 음식에서 나던 그 냄새였다.


    그렇다. 할머니는 생강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할머니가 하신 오만 음식에서 비슷한 향이 났던 거다. 돌아가신 지 십 년이 훨씬 넘었는데 할머니의 취향 한 가지를 알게 되다니, 뭔가 생강에서 할머니를 발굴해 낸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할머니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뽀글 머리 아래 얼굴을 기억해 보려고 애를 쓰면 상상 속에서 그려진 낯선 사람이 나타난다. 집에 불이 났을 때 가족사진을 모두 두고 왔기에 할머니는 사진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시골 가는 꿈을 꿀 때, 나를 마중 나오는 사람은 언제나 할아버지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무언가를 하느라 등을 돌리고 있거나 아예 나가 있다. 그럼 나는, 할머니는 언제 들어오시냐고 할아버지께 묻는다. 금방 들어올 거라며 이런저런 놀이를 하고 있자고, 할아버지는 말한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들어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곧 잠에서 깰 것도 잘 안다.

    할머니의 얼굴이 반짝 떠오르는 순간을 가끔 상상한다. 그러나 잊혔다 떠오르는 기억이 으레 그러듯이, 기억의 깊은 구석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이미지는 너무도 낯설게 마련이다. 그럼 나는 새삼 반가운 만큼이나 멀었던 망각의 시간을 더듬으며 미안해야만 할 것이다. 반갑고 어색하고 미안하고 불안한 마음이 내 속에서 한차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아마 멀미가 날지도 모른다.

    꿈에서 깨기 전, 시골 집 구석구석에 있는 할머니를 다시금 눈에 담는다. 주방 하부장을 열면 보이는 오래된 신문지와 순 후추, 재래시장 표 찐득한 들기름과 참기름, 상부장 아래 보이는 재활용된 유리병과 빽빽하게 담겨있는 맥심 커피, 프리마, 그 옆에 줄줄이 늘어선 설탕과 이가 나간 머그컵, 속에 무심히 꽂혀있는 티스푼, 큰 다라이에 불려 놓은 식기까지 꼭꼭 담는다. 진흙이 묻었다가 바짝 마른 장화와, 동네 교회 이름이 적힌 구두 주걱에도, 우둘투둘 강아지용 스테인리스 밥그릇에도 할머니는 존재한다. 그러니까 그곳이 할머니다.

    할머니 월드는 조금씩 확장된다. 오늘은 생강까지 나간 셈이다. 큼큼한 만두를 우걱우걱 씹으며 만두하다는 기분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만두 싶다. 만두했으면 좋겠다. 만두합니다. 만두했어요.


    명절에 만두를 들고 부모님 댁에 갔다. 엄마는 “하이고 할머니 만두가 진짜 맛있었는데 너네가 할머니를 닮아서...” 어쩌고 속사포로 소감을 밝혔다. 엄마는  속이야기를 하지 않고 변두리에 있는 말들로 울타리를 치곤 한다. 겉을 맴돌다 끝내 손을 놓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만두를  빚는 편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만두를 열심히 조달 먹었을 ....

    엄마의 시그니처는 간장이다. 소금을 안 쓰고 오만 데 간장을 붓는다. 나도 그렇다. 간장이 양념 중에 제일 맛있다. 큼큼하고 고소한 향이 나는 만두를 바싹 구워서, 새콤한 간장 양념을 옆에 두고 맥주 한 캔과 곁들이면 정말 만두하다. 어찌 만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그랬듯 만두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만두여... 만두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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