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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Jul 02. 2020

모험을 시작한 이유는 있다.

나를 알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다.


이 말이 밖으로 새어 나온 연유는 아마 가슴속에 묻혀있던 '관심받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발현된 탓이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내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어 오백 원어치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바람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른데, 내 기준 안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은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타인의 관심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표식 같은 거라 생각한다. 스스로 이 기준에 충족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렵다 못해 까다롭기까지 한 기준에 나는 한참 모자라는 사람이었다. 싶다가 싶었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먼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그런 사람이 곁에 머물며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 마음만 가지고 덤비기엔 아직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를 알기 위해 모험을 시작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생각이란 걸 해보려한다. 아마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니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시도하려고 한다.


갭이어(Gap Year) 기간은 필요했다.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싹싹 긁어모아 탕진을 꿈꾸었다. 찰나의 자유와 몸과 마음의 평안, 단지 그것만을 기대하며 떠난 모험이었다. 한때는 옮겨봤자 거기서 거기라 말했던 회사에서 크게 별일 없다면 버티기로 마음먹었던 마음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사직서를 냈다. 물론 쿨한 결말은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미래를 걱정하며 한 번,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들과의 작별이 슬퍼 한 번, '내가 그만두면 내 일을 누군가 떠안게 될 텐데'하는 오지랖 넘치는 걱정을 하며 또 한 번 망설이다 퇴사하기까지 무려 삼 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 지금까지 너무 재미없었던 인생에 뭐든 에피소드 하나쯤은 만들어야겠다.

- 인스타그램에 '있어 보이게!' 외국 생활 티를 팍팍 내며 글을 올리자.

- 퇴사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허송세월 보내기엔 뭐하니 영어 공부라도 해야지.

- 복잡했던 심경과 신변을 정리하자.

- 나도 모르는 ‘나’를 코딱지만큼이라도 파악해야겠다.


덕분에 주어진 삼 개월 동안 뭘 하고 싶은지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후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떠나자는 결심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리스트를 적다가 이렇게 하면 나를 알 수 있겠냐는 근본적 질문이 돌아왔다.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찾지는 못했지만, 뭐라도 얻을 것 같은 기대감이 솟구쳤다. 모험의 결과가 괜찮다면 좋은 일이고, 좋은 결과를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결론은 모험은 시작되었고 지금 나는 더블린에 있다.


떠나기 전 나는 지치고 무기력한 모습을 머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다 한국보다 아홉 시간 느리게 흘러가는 더블린에서 나는 하루를 느리게 살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 아홉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인천공항을 출발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달할 수 있고, 적어도 이 백 페이지 이상의 책을 두세 권쯤은 충분히 읽고도 남을 수 있다. 천천히 운전해도 부산에 있는 이모 집에 벌써 도착해서 한참 수다를 떨고 있겠지. 좋아하는 드라마를 연속해서 적어도 여섯 편 이상은 볼 수 있고, 하루에 약속을 몇 탕이나 잡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만 실컷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도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며 나를 알아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기회처럼 주어졌던 이 시간도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만, 모르는 새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후회하지 않도록 차례대로 정답을 알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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