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ONG Jul 03. 2020

외딴 곳에 도착했다.

거울엔 이모지 스티커가 붙어있다.


오후 세 시가 훌쩍 넘은 시간, 더블린 공항에서 예약해두었던 택시를 타고 브래이(Bray)에 있는 홈스테이 집으로 향했다. 많은 짐을 이고 지고 버스를 타는 모습이 상상만 해도 지치는 탓에 택시를 타는 일은 부득이 한 선택이었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말을 건네지는 못했지만 더블린에 온 걸 환영해, 여기는 무슨 일로 왔니?, 너 짐이 꽤 많구나? 등의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무슨 정신으로 뱉었는지 모를 말들을 곱씹으면서 이삼 십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숲에 둘러싸인 주택이 모여있는 동네였다. 택시는 뾰족한 지붕에 작은 잔디밭이 있는 하얀 벽의 이층집 앞에 멈췄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 도착했다!' 


안내를 받으며 이 층 방으로 올라갔다. 아담하고 귀여운 방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창이 보였다. 핑크색 커튼이 단정하게 묶여있다. 외관과 같은 하얀 빛으로 가득 찬 방엔 작은 책상과 바퀴 달린 파란 시트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고, 왼편으로는 검은색 라디에이터, 하얀색으로 칠해진 이 층 침대가 있다. 이미 주인이 있는 일 층 침대는 하얀 도트무늬가 박힌 핑크색 시트가 깔려있었다. 내가 사용할 이 층 침대는 파란색 벨벳 이불이 있다. 어린 아들, 딸이 사용했던 방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색감이다. 학교에서 받았을 것 같은 메달과 트로피, 직접 그린 그림이 벽 곳곳에 걸려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눈을 돌리는 모든 곳에 배어 있어 홈스테이를 찾아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 실감이 난다. '나 더블린이다!' 저녁에 호탕한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프랑스에서 온 룸메이트 로리한(Loreane)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내가 지내고 있는 홈스테이 가족은 폴란드인 알리샤(Alicja)와 아일리쉬 데린(Darren), 11살 큰 딸 하이디(Heidi), 9살 아들 루이(Louie)와 8개월 된 래브라도 리트리버 부츠(Boots)가 한 가족이다. 더블린 시티 센터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브래이(Bray)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데 한국으로 따지자면 서울에서 경기도 수원 정도의 느낌이다. 거리가 있다 보니 로리한은 외박을 하는 날이 잦았고, 어젯밤도 파티에 간다며 들어오지 않은 룸메이트 덕분에 1인실을 사용하듯 온전히 방 하나를 차지했다. 그날 새벽 한두 시쯤 아무런 이유 없이 캄캄한 어둠 한가운데에서 눈을 떴다. 이층 침대를 쓰다 보니 눈을 뜨자마자 까만 천장이 보였다. 유난히 어두운 밤, 어두운 방이었다. 


일단 어둠에 익숙해지려 몇 분 간을 눈도 감지 않고 천장에 시선을 주었다. 그런 다음 한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이 좋기 했지만, 갑자기 '외롭다'는 감정이 불쑥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새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기 어려워 일찍 잠을 청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잠이 깼고 이 꺼림칙한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해버린 것이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외로움이란 놈이 다시 찾아왔다. 역시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게 아니라 피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사람이 그리운 건지, 향수병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생경한 감정을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외로움'을 발견했다. 발견의 밤을 보내고서 외로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몇 시간 뒤 야심한 새벽 방문을 열고 들어온 로리한을 본 후 반가움에 크게 인사를 건네고서 외로움 일부가 사라졌다. 다음날 학원에서 한국인을 처음 만나고 살짝 남은 외로움이 가셨다. 외로움의 원인은 사람과 향수병 둘 다가 문제였다. 단 하루 만에 외로움을 알아버렸으니 앞으로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험을 시작한 이유는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