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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Jul 05. 2020

나는 지금 카페에 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대화를 염탐하면서.


더블린에서의 공식적인 첫 날을 기억한다. 어학원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버스도 타지 않고 한 시간을 쉬지 않고 정처 없이 걸었다. 마치 해외여행을 처음 떠나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신기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학원에서 시티 센터까지 가는 길은 왕복 사 차선 도로가 지나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탓인지 형형색색의 현관문에는 문 색보다 더 알록달록한 장식이 붙어있었다. 한 십오 분쯤 걸었을까, 더블린 만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그랑 운하의 물줄기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저 멀리 손톱만 하게 스테판 그린 공원이 보인다. 목적지가 눈에 보이니 더욱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느라 내 두 눈은 많이 바빴다. 그러다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고 최대한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리고 귀에는 이어폰을 손에는 읽다만 책을 들었다. 휴가를 위해 짧게 방문한 도시가 아니라서 마음가짐이 다를 줄 알았건만 더블린에 도착해 처음 하는 짓은 평소 때와 똑같았다.


커피를 몇 모금 홀짝이고, 책장 넘기기를 반복하다 옆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잠깐 시선이 머무르다 그칠 줄 알았던 내 눈은 꽤 오래 좌우로 움직였다. 굉장히 실례되는 줄 알면서도 대놓고 지켜볼 수 없어 눈을 힐끔거렸고 고개를 돌렸다 내렸다 수차례 반복했다. 머리가 하얗게 샌 노신사와 중년의 여성은 좀처럼 그들의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신선한 조합이었다.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의 대화방식이었다. 노신사는 가만히 여성이 하는 말을 들으며 얼굴에 손을 뻗거나 척하니 꼬은 다리의 방향만을 일정 시간에 규칙적으로 바꾸었다. 정말 한참을 골똘히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리가 있어 무슨 말을 건넸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표정만 본다면 심각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한참 이어졌다.


저 둘의 대화를 상상했다. 아마 여성은 고민이 있고 이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노신사는 조용히 귀 기울이다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레 건넨다는 상상이다. 오히려 반대의 관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이 든 나의 모습이 저러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신중하고 진중한 무게감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덤으로 저 두 사람처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생각을 전하기 전 영향력을 고민한다. 물론 내가 그 사람 인생에 어떠한 해답을 전하거나 훈수를 두기에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자신의 인생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고민의 질문 자체가 사실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안다. 조언을 구한 사람과의 신뢰를 깨고 싶지는 않으니 곰곰이 생각을 하고 신중한 표정과 마음가짐으로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단어 중 최적의 단어를 선정해서 문장을 만들고 입 밖으로 어렵게 뱉어본다.


그러다 내가 뭐라고. 여기에서 만난 나이차가 꽤 많이 나는 동생들에게 내 인생을 예로 들며 이게 좋다, 저게 좋다며 건방지게 떠든 날이 생각났다. 정말 가잖은 꼰대 근성으로 나열한 그 말들이 갑자기 창피해졌다. 우연히 전 날 엄마와 통화를 했다. 답답함에 찾아간 역술가가 딸의 새해 운세랍시고 이야기해주었다는 내용은 이랬다. 가장 많이 들어있는 말이 '말조심'이라고 했다. 우연의 아이러니란 참 어이가 없다. 지잘난맛에 사는 애라 더 조심하라고 했다. 그 두 사람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대화를 이어가고 있지만 옆에서 지켜본 제삼자인 나는 뭔가 정신 차리라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정신 차려야지. 이렇게 나는 나를 발견하고 한 번 더 정신을 가다듬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조언을 건넬 수 있을까'. 누구에게 조언을 하겠는가. 나나 잘하자. 시답잖은 표현의 말보다 사려 깊은 작은 행동으로 진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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