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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Jul 07. 2020

나의 똘이 이야기

반려견과의 이별을 받아 들이는 일



육 년째 접어든 똘이와의 동거생활이 한순간 끝난다면 어떨까, 티비를 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생활 속 보이는 똘이의 변화가 한 몫했다. 이를테면 간식을 먹을 때 침 흘리는 양이 늘어났다거나 원하는 만큼 실컷 산책을 하고 돌아왔는데 정작 흘러간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등의 일이다. 아마 하나둘 깨닫게 되는 세월의 흔적으로부터 두려움은 시작된 듯 하다. 언제 닥칠지 모를 내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을 모른 척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집 옆 공터 중앙에는 키 큰 왕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그 아래 똘이 엄마가 살았다. 주인 할머니가 오며 가며 밥도 주고 물도 주면서 나름 돌보는 듯했지만 내 눈엔 그저 방치하는 느낌에 평소 마음이 쓰였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아무도 모르게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제 새끼를 지키려 오가는 사람들에게 예민하고 경계하는 눈빛을 숨기지 못했던 녀석은 유독 우리 가족에게는 마음을 열었다. 가끔 묶여있던 낡은 줄이 끊어져 자유를 만끽할 때면 마치 제 집인 양 우리집 데크 위에 자리를 잡고 햇빛을 온 몸으로 느끼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지나다 눈이 마주치면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격하게 꼬리를 흔들어대는 탓에 우리 가족은 녀석을 쫓아낼 수 없었다. 살갑게 구는 녀석이 싫지 않아 간식을 사두고 챙겨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자라 세 마리의 새끼가 좋은 주인을 만나 보금자리로 떠나갔다. 유난히 작고 힘없던 막내만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엄마 곁에 남아 있었다. 그 아이가 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


반질반질한 흰 털에 귀, 몸 군데군데, 꼬리에도 살짝 콩고물이 묻어있는 진도 믹스견 똘이는 우연한 기회에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

"얘가 그 집 식구들을 따르니 남은 한 마리 데려가요. 엄마는 못 기를 테니 새끼라도 데려가서 키워. 보아하니 동물도 좋아하는 것 같고, 동물도 사람 따르면 말 다했지!"

반려견을 기를 생각이 전혀 없었던 우리 가족은 주인 할머니의 지속적인 입양 권유에 넘어가 똘이를 식구로 맞이했다. 아직까지 할머니의 논리는 이해되지 않지만 한 편으로 마음 쓰였던 녀석의 새끼가 어딜 가도 사랑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우리가 키우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모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된소리로 이름을 지으면 건강히 오래 산다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이 났다. 이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똘이는 아주 건강하고, 견생 육 년차임에도 꾸준히 남자아이로 오해를 받으며 잘 살고있다. 남자 이름을 가진 똘이는 애교가 없다. 사람으로 치면 애교 따윈 개나 줘버리라며 목소리도 낮고 무뚝뚝하니 뻣뻣하기만 한 나와 닮았다. 어쩜 개 딸이나 사람 딸이나 똑같은지 엄마는 오늘도 혀를 찬다.


똘이 엄마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탓에 더 이상 녀석의 똥꼬 발랄한 애교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기른 아이도 아닌데 먼 곳으로 떠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유 모를 서운함과 슬픔이 몰려왔다. 하다 못해 정든 이웃집 개의 죽음을 듣고도 알 수 없는 기분인데 살 비비고 지낸 반려견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막막하기만 했다.


똘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우리 가족에게는 두려움이 있었다. 내 인생 첫 반려견이었던 설이는 한겨울 눈 속에 파묻혀 숨만 겨우 붙어있었던 열 살 추정의 소형 믹스견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설이를 지나칠 수 없었고 차가워진 아이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집으로 달렸다.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갔다. 설이는 평생 인슐린을 맞아야 살 수 있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나이도 많아서 길어야 일이 년이 최대라고 했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비웃듯 설이는 무려 오 년을 우리와 함께 건강히 보냈고 잠자듯 편안히 먼 길을 떠났다. 특별히 아프거나 사고가 나서 갑자기 떠난 것이 아님에도 인생 처음으로 이별을 경험한 나는 삼 일을 먹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당시 죽음에 대해 체감하지 못했던터라 설이에 대한 죽음은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설이가 떠난 후 우연한 기회로 유기견 세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길을 떠돌던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와 자연스레 한 가족이 되었다. 그러다 동네에 유행한 홍역으로 삼 년 넘게 함께 한 아이들을 모두 잃었다.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임에도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똘이와 살기 전까지 아이들을 떠나 보낸 일이 실패라고 생각했다.

‘혹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내가 케어를 잘 하지 못해서 잘못되면 어떻하나'

‘내가 잘 보내줄 수 있을까’

‘상상도 되지 않는 슬픔의 무게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뜻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실패의 뜻처럼 그 동안의 이별은 두려움을 나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상황에서도 미리부터 겁먹게 되는 부작용을 나았다. 트라우마로 발현되어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어떤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두려움을 그대로 안고 살았다면 우리 가족은 똘이와 만날 수 있었을까,  똘이가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싶다. 나는 오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로 살아갔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감정의 소중함을 안고 하루하루를 지내고자 한다. 똘이가 떠나는 날 좋은 가족을 만나 편안히 살다 떠난다는 마음이 들 수 있게, 켜켜이 쌓인 서로의 추억을 방패 삼아 먼 훗날 만나게 될 이별의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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