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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Aug 29. 2020

비바람과 천둥이 치던 날

반려견이 천둥을 이기는 방법


기록적인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기고, 오만가지가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던 날을 기억한다. 그 날은 예외 없이 나와 똘이도 집 안에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세차게 퍼붓는 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한 가지 곤란한 것이 있었다. 바로 실외 배변만을 고집하는 똘이의 화장실 문제였다. 어떻게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밖에 꼭 산책을 나가려고 애쓰지만 몸이 젖는 것, 특히 발이 젖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는 우리의 똘이는 비 오는 날이면 아무리 좋아하는 산책이라도 거부했다.


똘이는 꾀가 늘었는지 비가 주야장천 오던 장마 시기엔 눈에 띄게 식사량과 물 마시는 양을 줄인다. 비 오는 날 먹지 않으면 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되니 아예 입에 음식을 데지 않는 것이다. 이건 마치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아!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하고 땡깡을 피우는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살짝 뜨끔했다. 잠깐이지만 내가 왜 화장실에 가자고 사정하며 어르고 달래는지 어이가 없지만 생리현상으로 불안 초조함을 고조시킬 순 없으니 인내하는 동물인 사람으로 태어난 내가 일단 참아보기로 한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해가 저물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잠을 청한다. 나는 에어컨을 제습 모드로 틀어놓고 타이머를 맞춘 다음, 인견 이불이 깔린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다. 똘이는 자신의 털 색과 대비되는 일인용 검은색 가죽 소파 위에 폴짝 올라가 동그랗게 몸을 말거나, 앉으면 푸욱 들어갈 만큼 푹신한 오렌지색 애착 쿠션 중 선택해서 자리를 잡는다. 각자 숙면을 위한 자리를 잡은 후 암묵적으로 눈을 맞추고 잠에 빠져든다. 반복되는 루틴에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날이다.


언제나처럼 잠이 들어 대략 두 시간 정도 흐른 듯싶다. 눈을 뜬 새벽은 전혀 평소와 같지 않았다. 주구장창 쏟아지는 비에 번쩍번쩍 번개와 천둥까지 가세한 하늘이 있는 대로 성을 내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혼자 잠을 청하던 똘이가 눈을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 나에게로 걸어왔다. 그때 보았던 똘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눈에 무서움이 가득했다. 성난 하늘만큼 평소완 다른 모습의 똘이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응석을 부렸다. 안아달라는 눈을 하고 한껏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애교 없는 똘이의 응석 한방으로 나는 잠결임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갓난아이가 천둥소리에 놀라 엄마를 찾듯 포옥 안겨있는 똘이를 토닥여주었다. 그제야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내쉰다.


의외로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많다. 특히 천둥이 치면 바로 구석으로 숨거나 심하게는 기절하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천둥, 번개에 공포증이 생긴 아이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의 불안을 잠재우고자 썬더 셔츠를 입히거나 특정 소리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바꿀 수 있도록 여러 훈련으로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등 여러 방법을 활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체온을 느끼며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보호자가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은 안심하고 안정감을 느낀다. 그 증거가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든 똘이의 모습이다.


갑자기 우리집에 오기 전 밖에서 생활했던 아기 똘이의 예전 모습을 상상했다. 야외 생활을 했을 때에도 천둥 번개에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표현도 하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눈을 하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니 참 안쓰러웠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는지 똘이는 지금도 짖거나 불안을 표현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삼키는 편인데 볼 때마다 안타깝다. 천둥이 무서워 똘이가 응석을 부렸던 밤을 기억한다. 어제보다 더 서로를 잘 알게 된 기념으로 꽉 껴안아주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나와 똘이는 등을 맞대고 있었고 다행히 하늘은 비구름을 떠나보내고 파랗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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