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아버지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타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라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의 말과 행동을 기억하며 나름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아버지의 삶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며, 그 깊이를 헤아리기란 여간 쉽지 않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아버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주인공 아리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아, 장례식장에서 유일한 상주로서 조문객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평생 아버지의 이념과 신념, 그리고 고집스러웠던 그의 모습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사회주의자였고, 비타협적인 물질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말이다. 아리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 속에서만 바라보았고, 그것이 그의 전부라고 여겼다.
그러나 장례식 동안 찾아온 조문객들을 통해, 아리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새롭게 알게 된다. 아버지는 단순히 한쪽 이념에만 매몰된 인물이 아니라는 걸. 그는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삶에서 구현하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사람이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한 남자일 뿐이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팀버튼의 빅피쉬다. 영화 주인공 윌은 아버지의 과장된 이야기를 모두 허풍이라 생각하며 그를 이해하지 못하며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삶이 사실 이야기만큼이나 경이로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살아생전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은 사랑과 기적의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왜 아버지를 안다고 생각한 것일까? 마치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책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랜 시간 곁에 두었던 책이라 해도, 겉표지나 몇 장만 훑어본다고 그 속의 이야기를 모두 알 수는 없지 않은가. 한 사람의 삶은 안내판 없이 길을 잃을 수 있는 깊은 숲처럼 복잡하니까.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아버지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누구나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주변사람들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이해하는 노력 속에서, 비로소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누군가를 안다고 판단하는 마음으로 다가가기보다, 모르는 마음으로 다가가려는 마음을 가져보고자 한다. 깊은 바다를 탐험하는 다이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