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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

by 뽀로미 Mar 11.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p236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반어법일까? 아니면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니, 그 의미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고등어나 연어 같은 어류가 분류학적으로 실체가 없다는 사실. 이 황당해 보이는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작가 룰루 밀러가 던지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과학 전문 기자인 저자가 스탠퍼드 초대 총장이자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탐구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엮어낸 작품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위기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것과 달리,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만들어가며 꿋꿋이 나아가는 조던의 태도에 깊은 매력을 느낀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 평생을 바친 어류 표본의 소실, 아내와의 이별. 그는 인생의 거센 풍파 앞에서도 낙천성을 방패 삼아 연구에 몰두했다. 혼돈 속에서도 물고기들에게 이름을 붙이며 세상을 정리해 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혼돈스러운 내면을 통제하려는 시도처럼 보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과도함의 덫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한다는 건 가능할까? 어떠한 상실감도 마치 마법처럼 새로운 일을 해내는 동기로 전환할 수 있는 그런 재주말이다.  그러나 조던의 끝없는 긍정성과 질서에 대한 갈망은 한계를 넘어선다. 그는 분류학자로서 세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했고, 결국 그 집착은 과학이라는 이름을 빌린 우생학으로 이어졌다. 학장 자리에서 물러 난 후, 그는 이탈리아의 장애인을 위한 아오스타 마을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을 '거위보다 지능이 낮고 돼지보다 품위가 떨어지는'장소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함으로써 인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우생학적 사고로 연결되었다. 조던은 결국 미국에서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불임화를 법제화하는데 기여했고, 이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선을 긋는 사람들







우리는 종종 질서를 만들고 구분 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지나치면 차별과 배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사회는 여전히 선을 긋고 구별 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경제적 차이, 성별, 학력, 출신 지역등. 이러한 구분들은 때로는 편견을 강화하고,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끊임없이 선을 긋고 구분하려 할까?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복잡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책에서 집중하는 자기 불안과 결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그 우월감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학벌, 직업, 경제력 같은 외적인 요소로 자신을 꾸미고, 그 기준을 통해 남들과의 거리를 설정하려 하며  더 높은 위치에 서야만 안전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수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진정한 자존감은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불완전함 속에서도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드는 대신, 경계를 지우고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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