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당신을 봤거든요.
이어폰으로 파헬벨의 캐논D 첼로 연주곡을 들으며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상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였습니다.
계단 끝에 다다를 무렵에, 고개를 드니 당신이 잔잔한 선율의 순간과 함께 반대편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토요일이었고, 무척 많은 이들이 각자의 표정으로 당신과 나의 사이를 가로질러 시야를 가렸지만,
당신의 모습이 내게 찰나까지 연속되어 기억되는건 새삼 놀라울 일이 아닙니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어서였을까요? 당신의 얼굴은 유독 빛나보였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답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음에도 아름답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게 답답할 만큼요.
내게 그러했던것처럼, 다른이의 빛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일까요?
혹시 당신도 나를 봤다면, 내가 먼저 인사하지 않은 것은 너그럽게 넘어가주세요. 길바닥에서 눈물짓지 않은 걸로도 잘한거라고 해주세요. 잘 참았다고 해주면 더 좋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우리가 평소 다니던 길로 갈까봐 너무 조마조마했습니다. 다른길로 가더군요. 이건 나를 위한 배려였을까요?
나도 이제 그 길로는 다니지 않지만,
당신의 걸음에서, 당신의 마음을 봤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택한 것으로 마주치지 않도록, 나는 처음의 그 길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제 멀리 돌아가지 말고, 당신이 좋은 길로,
당신이 편한대로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