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할머니

내 사랑 순이

by 지구별소녀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지 6개월 때부터 분유를 먹여가며 나를 돌봐주셨다. 장사를 하느라 늘 바쁜 딸을 대신해서 나를 키워주셨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엄마보다도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인지 나를 낳아준 엄마보다도 길러준 할머니와의 추억거리가 더 많은 편이다.


외갓집에 있는 할머니의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 돋보기안경을 끼고 손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드르륵드르륵" 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오늘은 또 무엇을 만들고 계실까?' 하며 궁금했다. 그래서 할머니의 바쁜 손끝을 계속 눈으로 쫓아가며 신기해서 바라보곤 했다. 할머니의 재봉틀 아래에 있는 공간은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곳이었다. 내 작은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좁은 장소였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나만의 비밀 아지트였다.


어느 날

"정림아, 바늘구멍에 실을 좀 꿰 줄래?"라고 말씀을 하셨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눈이 밝으셨던 할머니가 세월이 흘러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일조차도 많이 어려워하셨다. 한 손에는 바늘을 다른 한 손에는 실의 끝을 야무지게 잡고 실 끝에 침을 살짝 묻혀서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 건네드렸다. 그러면 할머니는 실 두 가닥을 잘 포개어 매듭을 지은 다음 구멍 난 양말이며 떨어진 단추를 감쪽같이 새 것처럼 고쳐놓으셨다. 할머니의 손은 어린 내 눈에는 마치 요술 손인 것 같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정림아, 지금 몇 시냐?" 하고 종종 물어보시곤 하셨다.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 시계를 정확히 볼 줄 모르는 나에게 시계 보는 법을 알려주시고 싶었던 것 같다. 할머니 댁에는 오래된 괘종시계가 하나 있었다. 괘종시계가 울릴 때마다 손가락을 접어가며

"할머니, 지금은 열 시.. (오. 십. 십오. 이십) 이십 분이에요."라며 더듬더듬 거리며 시간을 말씀드리곤 했었다. 할머니는 새로운 것을 알려주실 때마다 느긋한 마음으로 나를 기다려주셨다. 그런 할머니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시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쁜 엄마가 못 챙겨준 부분을 할머니가 채워주시려고 일부러 나에게 시간을 자주 물어보셨던 것 같다. )


외갓집은 내가 어려서부터 양말공장을 크게 했다. 그래서 학원이 끝나고 삼촌이 운영하시는 양말공장 사무실에 들르면 삼촌들과 이모가 양말 상표의 스티커를 붙이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홀로그램 스티커라 이리저리 살짝 비틀어보면 홀로그램 특유의 다양한 빛깔이 보여서 신기해서 나도 잘은 못했지만 일손을 거들곤 했다. 그 당시에는 양말이 외국으로 수출이 잘 되어서인지 장사가 워낙 잘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큰외삼촌이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드릴 테니 5일장에 양말을 팔러 나가시지 말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워낙 성격이 올곧고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셨다. 그래서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시고 답십리까지 양말을 이고 지고 가셔서 시장 한켠에 자리를 잡고 양말을 팔아서 생활비를 벌어 쓰시곤 하셨다. 딸, 아들이 아무리 말려보아도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본인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본인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생활하고 싶어 하셨다.


세월이 흘러서 내가 대학생 때 MT를 갔을 때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할머니께서 삼촌댁에 있는 소파 밑에 넣어둔 바퀴벌레 약을 눈이 침침하셔서 잘 모르고 누가 먹다 남긴 젤리인 줄 알고 다 드셔서 병원에 실려가셨다고 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행여나 할머니가 잘못되셨을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할머니는 위 세척을 마치시고 곤히 잠들어 계셨다. 잠든 할머니를 바라보며 '할머니가 얼마나 놀라고 고통스러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어느 날은 할머니가 돌을 삼키셔서 또다시 병원에 실려 가셨다. 치통이 심하셨는데도 바쁜 자식들에게 치과를 데려가 달라고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우셨던 것 같다. 그래서 다니시던 의료기기 판매처에서 언젠가 통증에 효과적이라고 설명을 들었던 돌멩이를 꺼내 입에 물고 계셨다가 그 돌을 그만 삼키셔서 목에 걸려서 응급실에 실려가셨다. 할머니도 이가 아프니 치과에 가고 싶으셨겠지만 바쁜 자식들한테 치과에 데려가 달라고 얘기를 꺼내기가 힘드셨을 것이다. 그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너무나 아렸다. 그래도 이번에도 할머니가 괜찮아지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점점 혼자서 생활하시기가 어려워지자 딸과 아들의 집에서 며칠씩 묵었다가 가시곤 했다.

우리 집에 오신 날. 할머니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다며 욕조에 물을 좀 받아달라고 하셨다. 욕조에 물을 다 받아놓고 할머니가 욕조에 들어가시도록 부축해드리면서 너무나 수척해지신 할머니를 보고 세월이 너무나 야속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던 할머니는 늘 정정하셨고 혼자서 멀리까지 가서 양말장사를 하셨던 분이셨는데...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달래무침을 해 놓으셨다며 먹어보라고 꺼내 주셨다. 달래 무침을 한 젓가락 맛보려고 젓가락을 드는 순간.

할머니의 흰머리가 여기저기 떨어져서 달래무침과 섞여있었다. 할머니는 왜 먹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하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할머니가 나이가 드셔서 흰머리도 이렇게나 많이 빠지고 눈이 많이 침침해지셨나. 서글펐다.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신데도 여전히 밥을 먹고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시곤 하셨다. 비록 할머니의 눈이 침침해져서 설거지 후에도 그릇에 밥풀과 고춧가루가 조금 남아있어서 내가 다시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아직도 정정해서 혼자서도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잠깐 계시면서도 혹여나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이 일 저 일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찾아가며 하셨다.


그러다가 결국, 할머니는 파킨슨 병과 치매에 걸리셨고 거동이 너무나 불편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24시간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가 되셨다. 삼촌, 이모들도 다 맞벌이로 일을 하고 계셔서 집에서 할머니를 모실 분이 마땅치 않아서 결국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큰 이모와 함께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을 찾아갔다. 요양병원에 계셔서인지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어린 시절 기억하던 모습과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늘 긴 머리를 은빛이 나는 짧은 비녀로 쪽을 지곤 하셨다. 세월이 흐르자 할머니는 긴 머리를 싹둑 자르시고 짧게 커트머리를 하고 다니셨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키워주셔서인지 "우리 정림이는 똥도 버릴 것이 없어"라고 말씀하시며 손주들 중에서도 유독 나를 예뻐해 주셨다. 그런 할머니가 요양 병원에 계시면서 점점 야위어가고 기억이 부분적으로 지워지는 것 같아 요양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내가 갈 때마다 손을 잡으시며 "정림아,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마다 데려다 드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를 낳고는 아이와 함께 요양병원을 방문했다. 할머니는 증손주의 재롱을 보면서 매일매일 똑같은 요양병원의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잠시나마 웃으실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자

할머니는 "정림아, 잘했다. 잘했어."라며 누구보다도 임신을 축하해 주셨다.

할머니의 병세가 점점 더 심해져서 고통이 점점 더 크다는 걸 잘 알면서도 할머니가 내 곁에 조금만 더 계시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할머니가 너무 위중하셔서 대학병원에 있는 응급실에 실려가셨다고 하셨다. 통화를 마치고 황급히 택시를 타고 할머니를 뵈러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누워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할머니의 몸 여기저기에 주삿바늘과 의료기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리 ''할머니, 할머니. 나 정림이야. 누군지 알겠어?''라고 할머니에게 물어보아도 할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기만 할 뿐이셨다. 그날 저녁 삼촌들과 이모들과 엄마가 병원에 모였고 엄마가 밤새 할머니 곁에서 간호를 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정림아! 할머니가... 할머니가...''엄마는 말을 이어 가지를 못하셨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단 한 마디도 남기지 않은 채 새벽에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응급실에서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게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며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고 서글펐다.


엄마의 전화를 받는 순간. 할머니를 그동안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슬퍼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둘째를 임신 중이어서 너무 슬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휘몰아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를 누구보다도 아껴주시고 한없이 사랑해주셨던 할머니이기에.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약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까지도 단 한 번도 꿈에 나오지 않으셨다. 부디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꿈에 나타나셔서 편안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을 꼭 보여주시면 좋겠다.

나를 키워준 제2의 엄마. 할머니.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하게 잘 지내시기를...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할머니! 정말 많이 그립고 그립고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