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부모님이 이혼한 가정에서 자랐구먼...'이라는 무섭도록 싸늘한 눈빛이어서 아직까지도 그 눈빛이 잊히지 않고 선명하게 뇌리 속에 박혀있다.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때론 사실대로 다 말할 필요가 없는 상황도 있거늘... 왜 바보같이 곧이곧대로 말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까? 지점장님에게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가게를 하고 계신다고 적당히 둘러댔더라면 이런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이 이혼하신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잘못을 한 것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일까?...'
그날 이후로 때론 솔직한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게 더 나은 상황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쁜 의미로 나는 한 단계 더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은행 창구로 왔다. 아이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고 계셨다. 아이 아빠가 양육비를 안 보내줘서 아이 이름으로 되어있는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이의 통장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싶어서 창구에 오신 것이었다.
어머님이 아이의 양육자이고 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마음 같아서는 얼른 비밀번호를 변경해서 돈을 찾아드리고 싶었다. 그 당시에 나는 은행에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옆에서 근무하는 선배에게 이 상황을 설명드리고 아이의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가 친권자이기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가 오셔야지만 통장 비밀번호를 변경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답을 얻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의 어머님께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 드리면서
"혹시 아이의 아버님 하고는 연락이 되실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아이 아빠는 연락을 해도 안 받고 연락이 안 된 지 몇 년이나 되었어요..."
"아... 정말 죄송하지만 은행의 절차장 아이의 친권자만이 통장의 비밀번호를 변경할 수 있어서요. 저도 돈을 찾아드리고 싶은데. 너무 죄송해요. 어머님..."
아이의 어머니에게 결국 도움을 하나도 못 드려서 너무나 죄송했다. 그리고 나조차도 앞서 지점장님이 그랬듯이 이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 어린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만 같아 더욱 가슴이 아팠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이혼을 하셨다. 그런데도 가끔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상처는 어른인데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힘겨웠던 적이 있었다. 하물며 아직 초등학생밖에 안된 저 아이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러한 난처한 상황을 얼마나 많이 맞닥뜨리게 될까?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이러한 상황의 내용을 알아듣게 된다면 이 아이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게 될까? '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처럼 나도 같은 처지에 있어서인지 그 아이의 모습에 내가 투영되면서 그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무거워져만 갔다.
나 또한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기까지 엄마가 일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며 참고 또 참고 사셨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때로는 엄마가 가정을 깨지 않고 유지하고 살아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늘 불행해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두 분이 함께여서 더 불행한 것이 아닐까? 두 분이 헤어져서 따로 사시면 두 분 다 행복하시지 않을까? 아직 시집을 안 간 나 때문에 이혼을 못하고 사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내가 짐처럼 느껴지던 순간도 있었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늘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나도 결혼을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결혼을 할 자격은 있는 걸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많이 해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부모님의 이혼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부모님과는 별개로 나 자신이 노력한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모든 이혼가정에는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혼을 한다.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이혼하는 가정이 많이 늘고 있어서 이혼은 더 이상 흠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이혼을 한 가정에 꼬리표를 붙여가며 흠을 찾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모든 사물이 왜곡되어 보이듯이 왜곡된 마음으로 이혼가정을 바라보면 이혼한 사람들과 그 가정의 아이들은 모두 다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때로는 마음의 상처가 잘 아물도록 도와주는 연고라도 있었으면... 아무는 과정이 눈에 보였으면...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마음의 상처는 예전에 입었어도 쉽게 아물지도 않고 내 내면 속에서 계속해서 덧나면서 상처가 더욱 깊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제는 그만 그때 입었던 마음의 상처를 놓아주고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