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가 빠지고야 말았다

내 사랑 순이

by 지구별소녀

몇 해 전 일이었다.

엄마의 지인분께서 꽃게 된장국을 맛있게 끓였다며 엄마에게 좀 드셔 보라고 가게로 가지고 오셨다.

엄마는 늘 야채를 다듬거나 물건 진열을 하시다가 식사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늦은 식사를 하곤 하셨다. 가게여서 반찬을 해 먹기가 마땅치 않으니 찬밥에 물을 말아서 김치하고만 단출하게 드셨다. 그래서 엄마가 밥을 드실 때 손님이 오시거나 사위가 가게에 갑자기 들를 때면 엄마는 허겁지겁 김치 반찬통 뚜껑부터 덮으셨다. 지인분은 엄마의 이런 사정을 잘 아셔서 아마도 마음이 쓰여서 꽃게 된장국을 가져다주신 것 같았다.


엄마는 꽃게 된장국 덕분에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하게 되셨다. 제일 먼저 숟가락으로 뜨끈한 꽃게 된장국의 국물을 맛보았다. 꽃게가 들어가서인지 국물이 매우 시원했다. 없던 입맛이 입안 가득 돌았다. 국물을 밥에 끼얹어 밥을 몇 숟가락 드시고 난 후에 통통하게 살이 잘 오른 꽃게의 집게다리를 야무지게 앞니로 깨물었다. 깨무는 순간 "악"소리가 났다. 단단한 꽃게의 껍질에 엄마의 앞니가 조금 깨지고야 말았다. 마음 같아선 깨진 앞니를 빨리 치료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늘 어려운 형편에 엄마의 이 치료는 돈을 지출해야 하는 우선순위에서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다가 한 달 전쯤. 지금까지 조심해가며 겨우겨우 사용해왔던 앞니가 덜렁덜렁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이가 결국 빠지고야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 큰 아이의 이가 빠졌다. 벌써 네 번째이다.

큰 아이는 올해 8살이 되었다. 작년부터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윗니 앞니가 제일 먼저 빠졌다. 그다음에는 아래쪽 앞니가 빠져서 아이의 입 안에 1자 모양으로 빈칸이 생겼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아래쪽 앞니 하나가 더 빠져서 아이의 입 속 구멍은 이번에는 ㄴ자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윗니 앞니가 하나 더 빠져서 테트리스 게임에 나오는 ㅜ자 모양으로 입 안에 또 다른 구멍이 생겼다. 지금은 아래쪽 앞니 두 개가 얼굴을 절반 정도 빼꼼히 내밀며 나와있다. 하지만 윗니는 아직까지 이가 새로 나지 않은 채 여전히 텅 빈 채로 남아있다.


큰 아이의 유치자 빠지자 걱정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반가웠다. 아이가 어느새 또 한 뼘 정도 성장한 것 같아 빠진 이가 마냥 귀여워 보였다. 아이의 이를 바라보다가 옛 추억이 생각났다. 내가 어렸을 때 이를 빼는 날이면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말하며 지붕 위로 이를 던진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이를 던질 지붕이 따로 없다. 그래서 아이의 유치를 휴지통에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서 자그마한 약통에 넣어 나란히 4개를 보관하고 있다. 아이의 빠진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새하얀 분필처럼 점점 더 뿌옇게 색이 진해져 갔다. 희한했다.


아이는 이가 빠진 자리가 신기한지 그 자리에 혀도 내밀어 보고 콘 옥수수를 먹다가 이가 빠진 곳에 끼우며 "엄마, 나 새 이빨 났어!" 하면서 자랑을 했다. 아이는 이가 빠져서 신이나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더 크고 튼튼한 영구치가 그 자리에 새로 날 것이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아이의 이가 빠진 걸 기념하기 위해 아이의 사진을 한 장 찍어 보았다. 아이는 마치 빠진 이를 한껏 뽐내기라도 하듯이 입을 크게 벌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이가 빠진 날. 나중에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엄마의 사진도 한 장 찍어 보았다.

이가 빠진 엄마를 보자 '늘 젊을 것만 같았던 엄마가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들었지'라는 생각이 들며 너무 갑자기 할머니가 된 것 같아 속상했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 감춘 채 엄마 보고 웃어보라며 카메라 버튼을 꾹 눌렀다. 엄마는 빠진 이를 보이는 게 민망하셨는지 "별 걸 다 찍네"하시면서 바로 입을 다무셨다. 그래서 이 사진 한 장을 겨우 건졌다.

같은 상황 다른 느낌 (앞니가 빠진 아들과 친정엄마)

아이의 경우는 마치 축구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 뒤에 예비선수가 있는 느낌이었다. 축구장에 있는 선수가 체력이 다해 더 이상 뛰지 못하거나 부상을 입게 되면 언제든지 이를 대체할 예비선수가 준비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더 이상의 예비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축구장에 뛰고 있는 선수가 체력이 다하거나 부상을 입으면 이제 남은 선수 10명이 11명의 선수의 역할을 하며 필드를 뛰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었다.


아이는 새로 날 이를 생각하며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는 반면 엄마는 이가 빠질수록 한숨이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그동안은 엄마의 머리에만 눈꽃처럼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은 줄 알았었는데 어느새 엄마의 입 안에도 노화라는 불청객이 서서히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몇 해 전 TV에서 우연히 가슴이 뭉클해지는 광고를 보았다.

광고 속에서는 딸이 엄마에게 "엄마 아~ 해봐"라는 말을 하였고 그 말을 들은 부모님들은 부끄러워서 입을 손으로 가리셨다. "우리 부모님들의 치아를 살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담긴 광고였다.


아이들에게는 행여나 충치가 생길까 봐 매일같이 입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엄마들 사이에서 좋다고 소문이 난 비싼 칫솔을 사서 열심히 양치질을 해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입 안을 본 적은 있는지. 엄마의 입 안에 이는 지금 몇 개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부족한 딸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치과를 다녀오겠다는 엄마에게 같이 가자고 말씀을 드렸다. 오랜만에 딸 노릇을 해보고 싶었다.


어제 오전 9시 30분.

아이 둘을 등원시키고 엄마와 함께 치과로 향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치과 의자에 누워계시는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오늘 난생처음으로 엄마의 입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엄마의 윗니는 11개.

아랫니는 10개.

다 합쳐서 21개의 치아만이 겨우 남아있었다.


2005년도에 아버지가 또다시 전 재산을 탕진하시고 5억이라는 빚더미가 우리 가족에게 갑자기 생겼다. 엄마는 결국 그 빚을 다 떠안는 조건으로 아버지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극심한 충격과 평생을 매일같이 일만 하셔서 쌓이고 또 쌓인 과로 때문인지 엄마는 갑자기 풍치를 심하게 앓으셨다. 풍치로 인해 밤새 잠을 못 이루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치과에 가보니 위 아래쪽의 어금니들이 이미 뿌리가 다 녹아서 결국 발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임플란트 상담을 받아보니 깨진 앞니 이외에도 어금니가 거의 없으셔서 식사를 하시는데 불편함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늘 부드러운 계란찜, 된장국과 같은 음식을 주로 드시곤 하셨다.

다행히 만 65세가 넘으셔서 치아 2개까지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실 수 있다고 해서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래서 빠진 앞니와 어금니 두 개를 임플란트로 새로 해 넣기로 했다. 치과에서 엄마의 사정을 봐주셨는데도 치료비가 2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치료비를 보태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수중에 그럴만한 큰돈이 없기에 엄마에게 많이 미안한 하루였다.


다음 주에 수술을 하시고 3개월이 지나 티타늄 나사가 잇몸에 잘 안착되면 엄마는 3개의 새 치아를 갖게 된다고 했다. 엄마가 연세가 있으셔서 다음 주에 2시간 가까이 진행이 될 임플란트 수술을 잘 받으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그날도 수술을 받고 와서 가게문을 열거라고 하셨다. 수술 날에는 집에서 쉬시라고 설득을 해 보았지만 엄마는 생각해보겠다고 답을 주셨다. 아마도 거절의 의미일 것 같다. 아마도 치료비가 부담이 되어서 그런 것이겠지.


엄마의 입 안을 제대로 들여다본 게 어제가 처음이라 어제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내가 조금 더 잘난 딸이어서 돈도 잘 벌고 했으면 진작에 어금니를 해드렸을 텐데...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다음 주에 수술이 잘 되어서 부디 엄마의 예전 치아처럼 자연스럽고 튼튼한 새 치아가 엄마의 입 안에 잘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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