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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May 13. 2021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

중학생 때 학원에서 국어 선생님이 글쓰기 과제를 하나 내주셨다. 글을 제일 잘 쓴 학생에게 선물을 하나 주겠다고 하셨다. 작은 보습학원이었기 때문에 학생은 나를 포함해 단 3명뿐. 1등이 될 확률은 무려 33.33333...%.


마음속으로 1등도 노려볼만하겠다는 약간의 자신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이기에 등수 여부를 떠나서 써야만 하는 글이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 내에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려 열심히 집중해서 써서 제출했다.


드디어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자신감이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1%의 가능성이라도 열려있기에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내 이름이 불렸으면 좋겠다'라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는 사이 1등의 이름이 드디어 호명되었다.


나와는 달리 태연한 표정으로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1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1등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지만 내 글에 대해 선생님이 작은 피드백조차 주지 않으셨던 게  더 속상했다.

그 후로도 '내 글은 무엇이 부족했을까? 어떻게 고치면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초등학생 때도 백일장에 나가 단 한 번도 수상을 한 경험이 없었기에 글솜씨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 실패로 '나는 원래 글을 잘 못쓰는 아이'라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되었다. 그 후로도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면 '어차피 써도 잘 못쓰니까'하며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겁쟁이가 되어갔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수학과 과학에 흥미가 많았기 때문에. 또 글쓰기를 잘 못하고 상대적으로 국어과목에 흥미가 덜 했기 때문에 이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장사를 하시느라 책을 거의 안 사주셔서일까? 자라면서 읽은 책이라곤 단 몇 권의 동화책과 소설책, 교과서와 참고서밖에 없어서일까?' 모의고사를 본 날이면 어김없이 120점 만점의 언어영역이 늘 내 발목을 잡았다.(내가 00학번이기에 수능이 등급이 아닌 400점 만점이었던 시절이었다.)


내신은 시험 범위가 정해져 있어서인지 그래도 반에서는 등수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면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안 읽어서인지 긴 지문을 빨리 읽고 올바른 정답을 쏙쏙 골라내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노력을 많이 해 보아도 단시간 내에 언어영역에서 고득점을 받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느새 고 3이 되었고 수능시험을 보게 되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좋은 대학들은 어김없이 수능점수에, 내신점수에, 논술시험까지 보는 학교들이 많았다.

수능시험이 끝나고도 주변 친구들은 논술시험을 치르려고 논술학원에 바삐 다녔다. 하지만 워낙 글쓰기에 소질이 없었고 논술학원에 다닌다 해도 글쓰기 실력이 단기간에 많이 향상되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기에 논술시험을 보는 학교는 해보지도 않고 원서접수에서 자동으로 제외시켜 버렸다.  


그래서 논술시험 없이 수능점수와 내신점수로만 들어갈 수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것도 교차 지원해서 문과인 경상 행정학부로.(경영학, 경제학, 행정학, 무역학을 공부하는 학부였다. 당시 나는 모 여대의 식품영양학과에 합격을 했는데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큰 이모의 추천으로 취업이 잘 된다는 경상 행정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 대학에 입학하자 또 다른 글쓰기인 "리포트"라는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이과 수업을 들었기에 리포트는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 과제였다.


그동안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학문은 늘 정답이 정해져 있었고 굳이 내 생각을 글로 서술할 필요가 없는 학문이었다. 경상 행정학부를 전공하면서 종종 내 생각이 담긴 리포트 과제를 써야 하는 날이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도 안 오고 답답해져서 컴퓨터의 흰 화면만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참 난감했고 좋은 성적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 리포트 과제가 주어질 때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들에 비해 독서량이 많이 부족한 것을 잘 알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으로 향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 책들을 한 권씩  빌려보며 그동안 못 다 채운 부족한 독서량을 채우려고 열심히 책에 파묻혀 시간을 보냈다.


졸업 후 취업시즌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력서는 사진을 첨부하고 내 신상을 간단히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쓰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잘 포장해서 써야만 하는 자기소개서는 한 줄. 한 줄 쓰기가 매우 곤욕스러울 지경이었다.


세월이 흘러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은행 직원, 바리스타, 영어학원강사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와의 소중한 추억을 기록해 보기 위해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누구에게 보여줘야 하는 논술시험이나 자기소개서가 아니기 때문에 마치 마우스에 날개가 달린 것처럼 막힘없이 술술 편하게 써 내려갔다.


그러다가 둘째가 어느덧 5살이 되었고 큰 아이도 올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오전에 나만의 시간이 조금씩 확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전 시간을 활용해 만보 걷기와 브런치에 글을 짬짬이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라는 앱에 내가 글을 쓸 공간이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비밀 아지트가 생긴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올해 초 큰 아이가 의도치 않게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면서 가정에서 뜻하지 않게 나오는 생활쓰레기가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제로 웨이스트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삶)에 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료를 찾아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조차도 그동안 편하다는 이유로 무심코 사용했던 것들이 환경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많이 놀랐다.


또 나처럼 환경을 보호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께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을 친절하고도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었다. 환경에 관한 글 덕분에 동네에 살고 있는 다른  엄마들과도 환경모임을 결성해 온라인상에서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면서 "화장품 통 어택" , "함께 쓰레기 인증하기 및 줄이기" 도 해보았다.


환경에 관한 글을 어느 정도 쓰자 '다음에는 무슨 주제로 글을 써볼까?'곰곰이 고민을 해 보았다.

현재 두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육아에 관한 얘기도 써보고 싶었고, 외벌이 가정으로 살고 있으니 아이를 키우면서도 소소하게 할 수 있는 절약 팁, 허리 통증에 관한 이야기 등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8년간 두 아이를 키우며 그동안 많이 찾아뵙지 못한 친정엄마가 불현듯 떠올랐다. 새까맣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새하얗게 변해버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에 관한 글을 써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손에 쥔 모래알이 빠져나가듯이 엄마와 함께 쌓았던 좋은 추억들이 점점 더 내 기억너머로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엄마에 관한 글을 18편 정도 쓰고 나자 한 주제에 대해서 40 꼭지 가까이 꾸준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썼던 18편의 글이 주로 즐겁고 행복한 추억보다는 힘들고 가슴 아픈 과거의 아픈 상처들이 더 많았기에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다가 눈물이 멈추지 않는 날도 더러 있었다. 글을 쓰면서 좋지 않은 기억들조차도 떠올려야 했기에 마음이 진정이 안 될 정도로 화가 나고 무거웠던 날들도 종종 있었다.


요즘 날이 더워서인지 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해서 챙겨줘야 할게 생각보다 많아서 피곤해서인지 글이 잘 안 써지는 글테기(글을 쓰는 권태기)가 찾아왔다.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해서 이참에 놓아버리면 앞으로도 영영 못 쓸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글이 다시 잘 써질 때까지 일상에서 소소한 글감이 떠오르면 자유롭게 쓰는 방향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리고 글을 쓰면 쓸수록 독서량이 뒷받침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글 맛집인 브런치에 들어와서 다른 분들의 주옥같은 작품을 읽어 보거나 여러 책들을 읽어보면서 시간보내고 있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세상에 이렇게나 글을 잘 쓰는 작가분들이 많다니... 하는 생각이 들며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글을 잘 못쓰기에 매일같이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직은 글을 잘 쓰는 것보다 글 쓰는 두려움을 없애고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야 하는 단계인 것 같다.

어젯밤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영어강사일이나 과외를 다시 한다면 글쓰기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해오던 큰 물줄기의 방향을 바꿔 글쓰기라는 작은 물줄기를 내는 과정에 있기에 이 과정이 나에게 버겁고 많이 힘겨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은 물줄기도 물꼬터지는 순간이 오면  어느새 물이 잘 흐르듯이 지금은 작은 물줄기를 내기 위해 무엇보다도 꾸준한 글쓰기가 필요한 것 같다. 


일기장에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매일 아침에 시간을 내어서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는 글쓰기가 조금은 덜 두려워지고 편안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글쓰기에  한 번 임해봐야겠다.


p.s 브런치 작가님들!

글이 잘 안 써지는 글테기 혹시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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