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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May 15. 2021

고사리손으로 만든 스승의 날 선물

오늘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초등학생 시절. 스승의 날이 되면 엄마는 담임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입장에서는 매해 스승의 날마다 선물을 준비하는 게 많이 번거로우셨겠지만 어린 나는 좋아하는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는 날이기 때문에 설레고 기분이 좋았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선생님을 좋아해 잘 따르는 아이였다.)


스승의 날 교실로 들어서면 교탁 위에는 이미 선물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예쁜 포장지에 곱게 감싸져 있는 선물들을 바라볼 때면 내가 받을 선물이 아닌데도 무슨 선물일지 매우 궁금했었다. 가끔 크기도 크고 왠지 좋아 보이는 선물들이 눈에 띌 때면 '내 선물인 양말도 선생님이 좋아해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내 선물이 조금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면 반장이 대표로 앞에 나가 선생님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렸고 우리는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노래가 끝나고 나면 반장이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읽어드렸다. 편지를 들으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뭉클해져서 곧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고3 때는 반 아이들이 돈을 조금씩 거두어서 선생님께 개량한복을 선물로 드렸다. 며칠 후에 선생님이 그 한복을 멋지게 입고 오셔서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웃으며 환호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를 유독 예뻐해 주셨던 할아버지 문법 선생님에게는 인사동에 가서 산 부채와 넥타이를 선물로 드렸다. 성인이 되어서도 ''스승의 날''이 되면 그동안 감사했던 은사님들의 얼굴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한편으론 선생님들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도 함께 드는 날이었다.




결혼 전에 학원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특히나 고3 아이들이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이면 '저번보다 성적이 조금 올랐을까? 모의고사의 난이도는 쉬웠을까? '하며 가슴을 졸였었다. 대망의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면 마치 내가 수능을 다시 치르는 것처럼 하루 종일 긴장이 되어 손에 일이 안 잡히곤 했다. 수능 후에 대학에 들어가서도 가끔씩 찾아오는 아이들을 볼 때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람이 매우 컸다. 아이들은 늘 내가 주는 것 이상의 사랑을 나에게 주었고 그 맛에 매료되어서 힘든지도 모르고 입시강사를 했었다.


비누꽃 한 송이, 스타킹, 책, 빵 , 펜 , 직접 만든 다이어리 등 아이들에게 받은 선물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에 몽글몽글한 좋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많지 않은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마련한 선물을 수줍은 미소와 함께 내밀었던 그 모습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이러한 좋은 기억들이 모여 추억이 되고, 기분 좋은 추억들이 쌓여 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좋은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스승의 날''이 되었다. 그래서 엊그제는 아이들과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선생님들께 그림편지를 그려보았다. 큰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서 학교 담임선생님과 합기도 사범님께 드릴 그림을 그렸다. 서툰 그림 솜씨지만 선생님들의 특징을 잘 살려서 열중해서 그렸다. 아직 한글을 잘 몰라서 글씨도 삐뚤빼뚤. ''감사합니다''도 ''갑사하민다.''라고 썼지만 선생님을 향한 아이의 사랑이 고스란히 편지에 담겨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큰 아이가 그린 담임선생님/합기도 선생님
5살 둘째가 그린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
카네이션 종이 접기

둘째 아이도 고사리손으로 색연필을 잡고 어린이집 선생님을 그렸다. 주말에도 보고 싶어 할 정도로 선생님을 많이 좋아해서인지 선생님 그림을 총 3장이나 그렸다.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무지개와 꽃과 하트도 그리고, 스티커도 붙이며 더욱 예쁜 그림 편지를 만들기 위해 손을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어린이집 하원 후에도 선생님이 자기가 그린 그림을 교실 벽에 붙여놓았다고 조잘조잘 신나게 얘기하는 아이를 보니 아이도 선생님이 선물을 마음에 들어하셔서 기분이 좋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스승의 날에 고마운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스승의 날을 재량 휴일로 지정해서 쉬는 학교들도 생겨난 걸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주변에 아는 아이 친구 엄마는 예전에 단설유치원에 꽃 한 송이를 아이 편에 보냈는데도 선생님께서 다시 돌려보내셨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마음 한켠이 씁쓸했다. 물론 과거에 선생님께 촌지나 지나치게 비싼 고가의 선물을 전달하는 분들이 있어서 김영란법(청탁 금지법)이라는 좋은 취지의 법이 생겼겠지만 아이들이 주는 꽃 한 송이조차 거절해야만 하는 현 상황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직접 쓴 손편지. 그림편지. 부담이 크지 않은 가벼운 선물 정도는 선생님들께 드리며 감사한 마음을 표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아이가 그린 그림편지를 사진 찍어서 담임선생님께 문자로 보내드렸다. 그림 솜씨가 많이 부족하지만 선생님께서 아이가 그린 편지에 감동을 받으셨다며 아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하셨다.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과 큰 아이 학원 선생님께는 쿠키와 작은 롤케이크를 사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편지와 함께 드렸다.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선생님의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동을 받으셨고 손을 내밀기 부끄러울 정도로 소소한 선물이었는데도 너무나 감사해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한 하루였다. (내가 과거에 학원에서 근무해서인지 학원 선생님들과 어린이집 선생님도 노고가 정말 많으시기에 스승의 날을 빌어 그림편지와 소소한 선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선물을 받는 기쁨보다 고마운 이에게 선물을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되면 남편이 써주는 손편지는 그 마음이 너무나 소중해서 아직까지도 8년째 상자에 넣어 잘 보관하고 있다. 아이도 이번에 그린 그림에 관해 살짝 아쉬움이 남았는지 내년에는 조금 더 미리 그림을 그려서 색칠도 예쁘게 하고 좀 더 완성도 있게 그림을 그려 선생님들께 드리자고 했다. 이 글을 쓰면서 '스승의 날에 선생님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선생님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선물은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정성스러운 손편지, 그림편지, 고사리손으로 곱게 접은 종이 카네이션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아이와 시간을 내어서 알록달록한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함께 접어보며 스승의 날의 의미를 떠올리며 기념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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