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길

내 사랑 순이

by 지구별소녀

모르는 번호로 전화벨이 울렸다.

요즘 들어 자주 걸려오는 광고전화일까 봐 받을까 말까 몇 초간 망설여졌다. 불현듯 엄마의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허리 통증으로 아침 일찍 대학병원에 가셨기 때문이다.

''정림아, 엄마야. 엄마가 병원비를 카드로 결제하려고 했는데 카드 한도가 초과돼서 결제가 안된데...''

엄마는 당황스러운 목소리였다.


병원에 가기 전날. 엄마는 핸드폰을 가게에 두고 가신다고 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나 진료실에서 전화가 울릴까 봐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핸드폰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꾸는 법을 알려드린다고 해도 엄마는 괜찮다며 늘 가던 병원인데 별일이 있겠냐며 핸드폰을 두고 가셨다. 하지만 가지고 간 신용카드가 한도 초과로 결제가 안되자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 분의 핸드폰을 빌려 나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얼마 전에 엄마 가게에서 파는 종량제 봉투를 신용카드로 구입하시면서 카드 한도가 꽉 찬 것 같았다. 당연히 카드 한도가 남아있을 줄 알고 엄마는 현금도 없이 신용카드 단 한 장만 들고 대학병원에 가신 상황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다급한 마음에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문의해보았다. 병원비를 수납할 때 직원분께 병원 계좌번호를 여쭤보고 그 번호로 입금을 하면 병원비가 결제된다고 안내를 받았다. 그래서 조금 전에 걸려온 번호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자원봉사자분이 미리 병원 계좌번호와 병원비를 알아보고 알려주셔서 재빨리 병원비를 송금했다. 다행히 모든 상황이 해결되어서 엄마는 병원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그 자원봉사자분의 관심과 따뜻한 손길이 없었더라면 연세도 많고 걸음도 불편한 엄마가 복잡한 대학병원에서 아마도 많이 헤매셨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더라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며 엄마에게 미안했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등교할 시간과 엄마의 병원 시간이 겹쳐서 병원에 함께 못 갔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가게로 돌아온 엄마에게 핸드폰 사용법을 차근차근 알려드렸다. 연세도 많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국민학교조차도 제대로 다니시질 못했기 때문에 엄마는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실 때마다 덜컥 겁부터 내셨다. 하지만 나보다도 기억력이 더 좋고 암산도 잘하실 정도로 머리가 좋으시기에 엄마는 무언가를 알려드리면 금세 배우시곤 했다.


''엄마, 핸드폰 화면을 켜고 나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쭉 끌어내려봐. 맞아. 잘했어! 엄마.

여기 소리라고 쓰여있는 스피커 모양 보이지? 이걸 손가락으로 한 번만 톡 누르면 핸드폰 소리가 진동으로 바뀌어. 엄마, 한 번 해봐.''


엄마는 평생 야채를 다듬어서 많이 거칠거칠해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스피커 모양을 한 번 누르셨다. 소리가 진동모드로 바뀌는 걸 보시고 마치 중요한 걸 외우기라도 하듯이 여러 번 중얼중얼거리시면서 소리를 진동으로. 진동을 소리로 바꾸는 걸 반복해서 연습하셨다. 이제는 핸드폰 소리를 진동으로 바꾸는 걸 알게 되었으니 핸드폰을 어디 가실 때 꼭 가방에 넣어가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신용카드 한도를 높이려고 함께 은행에 갔다. 다행히 엄마가 그 은행에서 대출도 받으시고 은행거래도 많이 해서인지 카드 한도를 바로 높여주셨다. 앞으로는 혹시 모르니 외출할 때 신용카드를 한 두장 더 여유 있게 가지고 다니시라고 당부도 드렸다. 핸드폰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카드의 한도를 높이고 나자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대학병원은 진료과가 어디에 있는지. 검사는 또 왜 이리도 많은지. 검사실은 어디에 있는지. 수납은 어디에서 하는지. 젊은 나조차도 대학병원에 갈 때면 헷갈려서 병원에서 길을 잃거나 헤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 자원봉사자분의 따뜻한 손길과 배려 덕분에 따뜻하게 잘 달궈진 돌을 가슴에 얹어놓은 것처럼 온종일 마음이 따뜻했다.


며칠 뒤 길을 가고 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길을 물으셨다.

''여기 근처에 엘지 유 플러스가 있다던데 혹시 아세요?''하고 여쭤보셨다.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 연배여서 혹시나 길을 헤매실까 봐 자세히 길을 알려드렸다. 할아버지는 친절히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셨다. 아주 사소한 도움인데도 감사의 인사를 넘칠 듯이 받은 것 같아 나도 덩달아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자원봉사자분께서 엄마에게 건넨 따뜻한 작은 손길이 내 마음에 와닿고 이번엔 이 마음이 할아버지에게 전달된 것 같아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달리기 계주에서 앞주자가 바통을 건네주듯이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살맛 나고 인간미 넘치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