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기다리신다

내 사랑 순이

by 지구별소녀

결혼을 해서 지난 8년간 두 아이를 기르며 오로지 앞만 보며 바삐 달려왔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엄마와 함께 한 시간이 지난 8년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평일 아침에 친정엄마의 집에 잠깐 들르고 있다. 엄마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쌓은 추억을 반찬삼아 아침밥을 먹어서인지 친정에서 먹는 밥은 늘 맛있고 먹고 나면 기운이 샘솟는 요술 밥상이다. 아마도 이 음식을 먹고 내가 조금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음식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밥과 반찬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먹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늘 혼자 놀곤 했다. 부모님은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가게문을 여셨기 때문에 늘 바쁘셨다. 그리고 오빠는 활발해서 매일같이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몸살이 심하게 나시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엄마는 장사를 안 나가시고 집에 계시곤 했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이 하도 좋아서 철이 없게도 '우리 엄마가 많이 아파서 장사를 못 나가게 해 주세요. 아니면 비가 억수로 많이 내리게 해 주세요.'라고 밤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잠들곤 했다.


하지만 하늘은 야속하게도 내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았다. 일 년 중에 비가 많이 내리거나 엄마가 장사를 못 나가실 정도로 심하게 아픈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다 커서도 엄마와 함께 있거나 엄마와 함께 밥을 먹는 그 시간이 그리도 좋았다. 이상하게도 늘 엄마가 그리웠다. 기쁜 소식이 있는 날에는 엄마와 함께 기쁨을 나누려고 갔고 속상한 일이 있거나 마음이 울적한 날에는 엄마에게 힘든 마음을 터놓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어제 아침에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엄마에게 미리 말씀을 못 드리고 볼일을 보러 외출을 했다. 연락도 없이 엄마의 집에 안 오니 걱정이 되셨는지 아침에 전화를 하셨다.


"정림아, 오늘은 왜 안 왔어? 엄마가 너 주려고 미나리 무쳐놓고 김치 담갔어. 이따 시간 될 때 가게로 와서 가져가서 먹어"


"알았어, 엄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연락을 못 드렸는데. 내가 올 줄 알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반찬을 하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했다. 헹구고 데치고 무치고 손이 많이 가는 나물반찬과 국을 아침부터 딸내미 먹이려고 분주히 만드셨을 생각을 하니 아무리 바빠도 미리 전화 한 통 드릴 걸... 괜히 번거롭게 해 드린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쓰였다.

엄마가 싸주신 반찬들로 차린 봄 밥상.

결혼을 하고 큰 아이를 우연찮게 바로 임신하게 되었다. 친정엄마는 가게를 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반찬을 해서 우리 집에 가져다주셨다. 내가 유산기에 조산기가 있어서 누워서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임신 중에도, 아이들을 출산한 후에도, 모유수유 중에도, 모유수유를 끊을 때에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우리 집에 오셔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뚝딱 만들어주시거나 아이들을 같이 봐 주셨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말씀을 안 드려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할 걸 아시고 우리 집에 오시지? '참 희한하면서도 감사했다.


몇 해 전 TV에서 흘러나오는 보험회사의 광고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있었다. 광고 속에 나오는 의사 선생님은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들에게


''당신에게는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위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앞으로 몇 개월밖에 못 산다는 의미로 알고 다들 깜짝 놀라 의사 선생님께 되물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하루에 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 출퇴근하는 시간, TV를 보는 시간,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들을 빼고 나니 앞으로 내 인생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광고였다. 그 광고를 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혼을 해서 매일같이 육아에 살림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니 우리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특히나 친정엄마와 함께 할 시간은 이제는 많이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동안은 엄마도 일을 하시느라 바쁘셔서 일 년에 딱 한 번 엄마 생신 때에만 우리 집에 모시고 와서 함께 식사를 했다. 함께한 시간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시간을 내서 엄마 집에 들르기로 결심했다. 같이 식사도 하고 얘기도 많이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날 무렵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교문밖에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우산을 들고 서 계셨다. 그 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있을까 싶어 여기저기 바쁘게 고개를 돌리며 우리 엄마 아빠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늘 부모님은 그 자리에 안 계셨다. 매번 안 오셨지만 어린 나는 이번에는 오실 거라고 매번 기대를 하며 잠깐 동안 어디 지붕 밑에 서서 비를 피하면서 부모님을 애타게 기다리곤 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나이 든 엄마가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매일 아침 나를 손꼽아 기다리신다. 번거롭고 피곤하실 법도 한데 매일 아침 얼굴에는 미소를 띠며 손을 바삐 움직여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반찬을 뚝딱 만들어 놓고 기다리신다.


어린 시절 늘 엄마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말처럼 나는 늘 엄마가 곁에 있어도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 몸에서 나는 엄마 내음, 엄마의 숨결이 그리도 좋았고 늘 함께 있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품이 좋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면서 엄마보다는 친구에게, 남자 친구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내 시간을 내주며 엄마에게는 시간을 거의 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비 오는 날 엄마가 우산을 가져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이제는 엄마가 나를 매일같이 기다리신다. 아이 같은 마음으로 딸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엄마를 위해 오늘 아침에도 친정집에 가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고 와야겠다. 아주 맛있다며 엄마가 해 준 밥은 늘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우고 와야겠다.


어린 나에게 한없이 크고 시원한 나무 그늘을 드리워주던 엄마.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허리도 굽고 앙상한 가지만 남고 작아진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시원하고 커다란 그늘을 드리워줄 수 있는 멋진 나무 같은 딸이 되어드리고 싶다. 설사 그런 큰 나무가 되지 못하더라도 엄마 곁에 서 있는 친구 같은 나무가 되어 도란도란 말동무도 되어주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늘 곁에서 서로 의지가 되고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나무같은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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