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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Dec 23. 2021

다시 자가격리를 당할 줄이야

두 번째 자가격리

올해 초.

큰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서 자가격리를 경험했었다. 열흘 넘게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는 제약이 주는 답답함과 우리 아이가 언제든지 양성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50% 나 된다는 불안감이 더해지면서 내 심경은 복잡 미묘했었다. 자가격리가 해제되던 날. 우리 가족은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자유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동네에 있는 가까운 공원을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그 이름도 낯선 자. 가. 격. 리.


2021년 12월 23일.

이번에는 둘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의 같은 반 친구가 확진을 받았다고 연락을 받았다. 같은 반이니 우리 아이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서 가까운 선별 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밀. 접. 접. 촉. 자가 되면 내일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와도 며칠간의 자가격리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지난 경험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나 아직 5살인 우리 둘째는 코로나 백신 주사도 안 맞았기 때문에 자가격리기간은 짧게는 10일에서 20일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혹시 몰라서 둘째와 큰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보건소에 방문해서 검사를 받았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는 올해만 해도 코로나 검사를 8번이나 받아서인지 이제는 코로나 검사를 받아도 울지 않고 잘 견뎌줬다. 대견하고 고마웠다. 다음은 내 차례. 둘째가 이미 겁을 잔뜩 먹은 지라 내가 먼저 검사를 받고 둘째를 달래야 했기에. 또 검사가 그리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기에 조금 고통스러웠지만 괜찮은척하며 검사를 마쳤다. 다음은 우리 둘째 차례. 올해 세 번째 검사이지만 아직 다섯 살밖에 안되어서인지 이 녀석이 겁을 잔뜩 먹고 울먹이며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검사하시는 분께서는 내 다리로 둘째의 다리를 고정하고 내 팔로 둘째의 팔을 꽉 잡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리 내 온몸에 힘을 주고 둘째를 붙잡아도 겨우 15 킬로그램이 조금 넘은 이 녀석은 어디에서 그런 어마어마한 힘이 솟아나는지 내 다리 힘은 풀리고 둘째가 팔로 코를 막고 난리가 아니었다. 옆에 있는 큰 아이와 보건소 남성 직원 두 분까지 힘을 보태어서 둘째를 붙잡아주셔서 다행히 검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검사가 끝나자 아이는 보건소가 떠내려가라 대성통곡을 했고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급 피로해졌다.


세 명이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남편과 주말부부라 아이들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엄청 기대하고 설렘에 마음이 부풀어있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늘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장소에 불청객처럼 불쑥불쑥 나타나서 우리의 흥을 펑하고 터뜨리고 사라졌다. 둘째가 항상 네 밤만 자면 아빠가 온다고 고사리손으로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이번 주에는 아무래도 둘째가 아빠의 얼굴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집에 도착하니 점심을 차려먹을 기운도 없었다. 다행히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쿠키가 있어서 큰아이는 안방에서. 나는 식탁에서. 작은 아이는 거실에서. 마치 삼각형을 그리며 우리는 흩어져서 점심 대신 쿠키를 먹었다. 다 먹고는 바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집에서도 마스크라니. 새하얀 마스크의 색처럼 이 광경이 너무나 생경하다. 마스크를 하루 종일 끼고 있으니 '평소에 남편과 우리 두 아이가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이리도 답답한 마스크를 끼면서 하루 종일 생활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이었다.


"예전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었지. 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그 말을 바꿨어. 지금은 뭉치면 큰일 나고 흩어지면 사는 세상이 되었어."라고 내가 말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네. 바뀌었어. "라고 8살 배기가 말했다.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간편하게 중국요리를 시켜먹을까 하다가 카레 재료가 냉장고에 있어서 카레를 휘리릭해서 아이들과 함께 또 삼각형을 그리며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카레가 맛있게 잘 된 건지 내 스트레스가 폭발했는지. 식욕이 폭발했는지. 카레를 두 그릇 정도 먹었다. 미쳤다. 포만감 때문이었는지 오늘 긴장을 해서인지 잠이 마구마구 몰려왔다. 설거지를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보다가 우리 셋다 잠이 들었다. 둘째가 평소보다 왠지 기운이 없이 축 늘어져서 마스크를 낀 채로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숨을 잘 못 쉴까 봐 마스크를 풀어줬다. 몇 시간 후에 아이들을 깨워서 딸기를 씻어 주었다. 아이들이 딸기의 당분 때문인지 기운이 조금 살아난 듯 보였다. 벌써 밤 열시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늦은 낮잠을 자서인지 늦은 시간인데도 잠이 안 온다. 아이들과 TV를 조금 보다가 잠을 청해야겠다. 과식을 해서인지 속이 더부룩하다. 소화제를 얼른 먹어야겠다. 이렇게 자가격리의 첫째 날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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