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딸이 아닌척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by 지구별소녀

며칠 전에 집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친정엄마의 옛날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보통 필름 사진 아랫부분에는 사진을 찍은 날짜가 적혀 있는데 이 사진은 언제 찍었는지 날짜가 나와 있지 않아서 뒤집어 보았다.


사진 뒷면에는

도로타 시매코바, 슬로바키아

2001.7.28일

이렇게 쓰여있었다.


어렴풋이 예전에 엄마가 해 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외국 사람이 엄마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가져다주었다고...

20년 전에 찍은 사진인데도 빛바램도 없고 마치 어제 찍은 사진처럼 우리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사진 속의 엄마는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외국 분이 우리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인화까지 해 주신 것 같았다. 아마도 부지런히 사시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런 엄마에게 사진 한 장을 선물로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사진을 보니 갑자기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교에 막 입학하고 새 친구를 사귀었을 때였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나를 처음으로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네 집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아파트였다. 그때까지 내가 가본 아파트라고는 목욕을 주기적으로 하기 위해서 갔던 우리 큰외삼촌 댁밖에 없었다. 친구의 집은 새로 지어서인지 매우 깨끗했고 넓었고 내가 사는 가게방과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친구네 집은 방이 3개여서 안방은 친구의 부모님이. 다른 방은 내 친구가. 또 다른 방은 친구의 남동생이 쓰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가게방은 방이 2개여서 앞쪽의 방은 엄마와 내가(여자 방). 뒤쪽의 방은 아빠와 오빠(남자방)가 쓰던 것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똑같이 식구가 4명인데도 친구와 나의 집은 너무나 달랐다.


친구의 엄마는 집에 안 계셨다. 114에서 전화 안내원으로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는 목에 항상 집 열쇠를 걸고 다녔었는데 텅 빈 집에 혼자 열쇠를 열고 들어갈 때마다 매우 쓸쓸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친구가 부러웠다.

나는 속으로 조금 쓸쓸해도 좋으니 이런 멋진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을 부르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부를 수도 있고,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는 내 방도 있고, 깨끗하고 넓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우리 집이 아닌 우리 동네에 놀러 왔다.(사실은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집도 좁고 가게방이어서 친구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구와 같이 한참을 동네 구경을 하다가 친구가 갑자기 목이 마르다며 앞에 보이는 마트에 가자고 했다. 나는 그 마트에 정말 가기 싫었다. 그 마트 바로 앞에서 우리 엄마가 노점 장사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마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후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친구를 따라가 친구와 음료수를 사서 마트를 나왔다. 마트 앞에서 장사하시는 엄마가 나를 못 보셨으면 했지만 운이 없게도 나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하지만 앞치마를 매고 길에서 장사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차마 그 친구 앞에서 우리 엄마라고 소개를 못했다. 엄마를 모른 체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뒤통수가 매우 따갑고 뜨거웠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종종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걸어갔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온 날과 그다음 날까지도 엄마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나를 혼내지 않으신 게 너무나 이상했지만 엄마가 그냥 넘기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 뒤. 나보다 네 살 많은 고등학생인 오빠가 나를 불렀다.

"야, 너 며칠 전에 길에서 친구랑 있을 때 엄마 모른 척했어? "

"..."

"너 다시 한번 엄마 모른 채 하면 오빠가 가만 안 둘 줄 알아. 너 때문에 엄마 엄청 속상해했어. 이게 죽을라고..."

"..."


그랬다. 엄마는 너무 속상하셨는데도 나한테 내색을 안 하신 거였다. 아니 못 하신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싶지만 그 당시에는 사춘기였고 친구의 집을 이미 갔다 온 터라 길에서 장사하시는 엄마를 우리 엄마라고 소개하면 친구가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그날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내 친구에게 우리 엄마를 소개했더라면?

소중한 우리 엄마가 나 때문에 상처를 받지는 않으셨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가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부당하게 돈을 번 것도 아닌데

힘들게 길에서 장사하면서까지 나를 뒷바라지해주신 엄마인데

내가 왜 그리 엄마라고 아는 체하는 게 부끄러웠었는지...

만약에 내가 우리 엄마 입장이고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 앞에서 나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 지나갔다면? 나는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에게 서운하고 속상했다고 얘기 안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빠한테 혼날까 봐 그랬는지 엄마한테 진심으로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랬는지 그날 이후로는 길에서 장사하는 엄마를 부끄럽게 여겨 아는 체를 안 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던 엄마는 예전처럼 지금도 여전히 40년 넘게 장사를 하고 계신다. 그 사이에 철부지 중2 딸은 어느새 커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다가 시집을 가서 아이 둘을 낳고 친정 옆에서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친정엄마를 "외할머니"나 "쌍문동 할머니"가 아닌 "까까 할머니"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팔고 계시니 까까를 주는 할머니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신다. 아이들이 과자를 좋아하니까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이 이틀. 삼일에 한 번꼴로 엄마 가게에 꼭 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인지 내가 중 2였을 때처럼 우리 엄마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가 작은 슈퍼를 하고 계셔서 친구들한테 할머니 가게에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는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다. 할머니가 슈퍼를 해서 즐거워하는 손주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내가 중 2 때 엄마에게 드렸던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고 흐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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