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무렵.
학원 수업이 끝나면 외삼촌이 운영하시는 사무실에 놀러 가곤 했다. 이모도 외삼촌의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서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려고 사무실에 들르곤 했다. 그날도 학원이 끝나고 외삼촌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안에서 외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림이 아빠는 손가락을 잘라야 해!"
"어?!!!"
외삼촌의 목소리는 잔뜩 화가 나 있었고 차가웠고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놀란 가슴은 아무리 진정시키려고 애써봐도 좀체 가라앉지를 않았다.
'우리 아빠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외삼촌이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고 했을까?.. 우리 아빠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을까?...'
끝내 사무실의 문을 열지 못한 채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외삼촌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엄마에게조차 왜 그런 건지 물어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외삼촌이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아버지가 또 도박에 손을 데서 전 재산을 날려먹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사업을 만회해보고자 처음으로 도박에 손을 뎄다. 결국 공장 보증금 150만 원과 양말 짜는 기계 20대를 날리고 공장문을 닫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는 외갓집이 있는 쌍문동으로 이사를 와서 겨우 6개월이 된 나를 외갓집에 맡기고 28살의 젊은 나이에 야채장사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양말공장을 운영하시는 외삼촌의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이번에는 빠찡코에 손을 데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까지 다 날려버려서 삼촌의 양말공장에서 아버지는 쫓겨났다. 그래서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야채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5년 후.
내가 10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엄마 모르게 지인들에게 850만 원을 빌려 주었다. 엄마에게 비밀이 생긴 아버지는 그 돈을 만회해보고자 이번에는 경마에 손을 뎄다. 그래서 외삼촌이 격노하신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고생만 하다가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을 간 여동생이 또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으니 외삼촌이 그렇게 심한 말을 할 법도 했다. 이번에는 가진 돈을 다 날린 것도 모자라 빚까지 져서 6,000만 원 정도를 허공에 날려버렸다. 그래서 엄마는 아버지의 빚을 갚고 자식들을 뒷바라지해야 했기에 길거리에 나가서 노점 장사를 시작했다.
그랬다. 우리 아버지는 지독한 도박 중독자였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손가락을 자르면 발가락으로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도박의 유혹을 끊기가 어렵다는 표현일 것이다. 아버지는 도박을 해서 전 재산을 날릴 때마다 엄마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곤 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아버지는 꼴 보기 싫었지만 어린 자식들이 둘이나 있었기에 힘든 세월을 자식들을 바라보며 참고 또 참으며 지내셨다.
엄마는 자식들이 있기에 가정만은 지키고 싶었고 아버지가 도박에 빠지면 빠질수록 점점 더 억척스러워지셨다. 우리 가정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는 야채가게에서 일하시는데 엄마는 왜 길거리에서 또 장사를 하냐며 돈을 얼마나 벌려고 이렇게 억척스럽게 사냐며 비아냥거렸다.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서 일 년 365일을 쉬지 않고 길거리에서 장사를 해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길러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피아노 학원에 가는 길에 작은 문방구가 하나 있었다. 엄마가 100원, 200원씩 주신 용돈을 모아서 문방구에서 뽑기를 재미 삼아했다. 어느 날. 난생처음으로 근사한 장난감이 뽑혀서 엄마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엄마도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엄마의 표정은 매우 차가웠다.
"너도 아빠 닮아서 이런 거 하는 거야? 이런 거 다시는 하지 마! "
엄마는 행여나 내가 아빠를 닮아서 나쁜 길로 빠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는 뽑기를 하지 말라며 단단히 일러두셨다. 그 후로는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다시는 뽑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가 노점에 나가서 장사를 하면서 얼굴과 손과 발에 동상이 생길 정도로 고생하신 게 결국 아버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아버지를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아버지에 대한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내 아버지인 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엄마가 나 때문에 이혼을 못하고 참고 사시는 것 같아 너무나 죄송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도 아버지처럼 한탕주의의 피가 흐를까 봐 게임조차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적게 벌어도 매일같이 열심히 일해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벌려고 애썼다.
하지만 경마가 마지막이라던 아버지의 말씀은 결국 거짓말이었다. 정말 끝인 줄 알았던 아버지의 도박 중독은 안타깝게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아버지가 도박으로 꿈꾸었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도박으로 한방 챙겨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을까?
확률적으로도 돈을 따기보다는 잃기가 더 쉬운 도박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면서 헤어 나오지 못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하시면서 아버지가 베팅한 패에 우리 가족의 미래를 거는 건 너무 무모했던 게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도박을 했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결국 깨진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아버지가 힘들게 끊으셨던 담배처럼 조금만 더 결단력 있게 도박을 끊으셨다면 우리 가족의 모습은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