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두 살 어린 사촌 여동생의 돌잔치에 돌반지 선물이 많이 들어왔다. 사촌 여동생은 나와는 달리 양말공장 사장님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사촌 여동생이 받은 돌반지들을 보고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나도 OO처럼 반지 가지고 싶어. 나도 반지 사주면 안 돼?" 하고 물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가 산부인과 병원비조차 없어서 구하러 다녔을 정도로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돌이 되었을 때 돌잔치는커녕 제대로 된 돌사진조차 찍어줄 수 없었고 돌반지 하나도 해 주지 못했다. 어린 내가 반지를 가지고 싶다고 한 말이 너무나 안쓰러웠는지 외할머니가 돌반지를 하나 맞춰서 선물해 주셨다.
엄마는 혹시나 내가 끼고 다니다가 잃어버릴까 봐 일반 돌반지처럼 끝이 벌어지는 반지가 아니라 어른들 반지처럼 끝이 막혀있게끔 돌반지를 맞추었다. 반지를 찾은 날. 외할머니에게 반지 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동네에 있는 외갓집에 혼자서 다녀오겠다고 엄마를 조르고 또 졸랐다.
장사를 하고 있던 엄마는 내가 계속 조르니 마지못해서 그럼 할머니네 빨리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반지를 자랑할 마음에 신이 나서 할머니 집으로 갔다.
할머니네 집에서 놀다가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검은 가죽잠바를 입은 낯선 아저씨가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꼬마야 너 예쁘게 생겼구나. 아저씨한테 손 좀 보여줘 봐"
"네?..."
나는 그때 당시 4살, 5살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모르는 아저씨였지만 손을 보여달라고 하길래 손을 내밀어서 보여줬다.
아저씨가 내 손에서 돌반지를 빼 갈동안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저씨 얼굴을 자세히 쳐다볼 수도 없었다. 반지를 뺀 아저씨는 한 마디만 남기고 떠나갔다.
"아저씨가 가는데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아저씨가 혼내줄 거야. 그러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가만히 있어."
"..."
검은 잠바를 입은 아저씨가 너무 무서워 보이기도 했고 혹시나 내가 소리라도 지르면 그 무서운 아저씨가 다시 올까 봐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있는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주머니들 세 분이 밭을 매고 계셨는데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아무런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아저씨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이 마구마구 났다. 그때부터 ''엉엉'' 울면서 엄마 가게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울면서 가게로 들어오자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었다.
"어떤 아저씨가... 나한테... 100원을... 주면서... 내 반지를... 가져갔어... 엄마... 반지를... 잃어버려서... 너무... 미안해..."
라고 말했다.
"어?"
엄마는 재빨리 내 손을 확인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반지만 가져가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반 돌반지처럼 벌어지는 반지가 아니었기에 혹여나 반지가 빠지지 않았으면 아저씨가 내 손가락을 잘라갔을까 봐 엄마는 걱정을 했었다. 첫째는 반지만 빼 간 것에 감사했으며 둘째는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엄마는 다시 한번 고마워했다.
나쁜 아저씨가 소중한 돌반지를 빼갔는데 감사하다고 말을 하시는 엄마가 어린 마음에 이해가 안 됐다. 반지를 잃어버려서 엄마한테 크게 혼날 줄 알고 겁을 잔뜩 먹었었는데 혼나기는커녕 다행이라고 하시니 반지를 잃어버린 건 속상했지만 혼나지 않아서 속으론 기분이 좋았다.
며칠 후. 가게 앞을 지나가는 어떤 아저씨를 가리키며
''엄마. 저 아저씨가 내 반지를 빼갔어!''
엄마는 내 입을 손으로 막으며
''그런 말 절대 하지 마. 그런 소리하면 큰일 나. ''
행여나 누가 나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엄마는 겁이 났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밖에 없던 돌반지를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엄마는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순금으로 반지를 하나 맞춰주셨다. 한동안 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그 반지를 끼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자격증 시험을 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우리 집 아파트 현관문이 뜯겨있었다. 집에 도둑이 들어서 엄마가 해주신 금반지를 훔쳐가 버렸다. 잃어버린 다른 귀걸이와 목걸이, 반지들보다도 엄마가 해주신 의미 있는 반지를 또 도난당했다는 사실에 정말 화가 나고 속상했다. 하지만 경찰이 출동했어도 결국 이 반지도 찾지 못했다.
지금 내가 어른이 되어서 돌반지를 훔쳐간 아저씨를 생각하면 고맙다고 해야 할지 나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나를 해치지 않은 건 고마웠지만 어린 나에게 100원을 쥐어주며 외할머니가 사주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돌반지를 빼앗아 간 부분은 정말 화가 난다. 그 아저씨는 어린아이의 돌반지를 훔쳐갈 정도로 어려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