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雙門洞)이다. 옛날에 마을 안에 두 개의 효자문이 있어서 쌍문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아기공룡 둘리" 만화에 나오는 성질머리가 고약한 고길동 아저씨가 나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게 더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약 40년 넘게 한 동네에서만 살고 있는 쌍문동 토박이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쌍문동의 과거 모습과 현재 모습이 내 눈앞에 동시에 펼쳐지면서 오버랩이 되곤 한다. 지금은 깎아서 높은 건물을 지어 올려서 없어진 민둥산이며 많은 가게들의 장사하는 소리들로 하루 종일 시끌벅적했던 골목길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태어난 지 6개월 때 쌍문동으로 이사 와서 야채가게에 딸린 가게방에 살기 시작했다.
건물 2층에는 주인집 아주머니 가족이 살고 계셨다. 1층에는 건어물 가게, 옷 가게, 야채 가게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1층 안쪽에는 두 개의 가정집이 있었고 재래식 변기가 있는 공용 화장실이 두 칸 있었던 옛날 집이었다.
야채가게를 들어가면 엄마와 내가 생활하는 앞 방이 있었다. 이 방의 왼편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도와 연탄불이 있는 작은 부엌과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는 구조였다. 우리 가족은 네 식구라 엄마와 나는 가게 앞 쪽에 있는 방(여자 방)에서 생활했고 아빠와 나보다 4살 많은 오빠는 뒤쪽에 있는 방(남자 방)에서 생활을 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 집에 살아서인지 내가 생활하는 방이 좁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무섭고 들어가기 싫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부엌이었다. 어두운 부엌에 들어가려고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바퀴벌레들이 불빛을 피해 어두운 구석으로 사르륵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떴더니 내 배 위에 귀뚜라미 세 마리가 앉아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소리를 질렀고 엄마가 재빨리 다가와서 귀뚜라미를 없애주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그래서인지 가을에 "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누군가는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아 반갑고 운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아찔하고 아직도 귀뚜라미가 무섭다.
특히나 겨울이 다가오면 추운 부엌에서 샤워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벌레들도 너무 무서웠고 찬물밖에 안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워를 하려면 연탄불에 물을 끓여야 했다. 그 뜨거운 물에 찬물에 섞어서 따뜻한 물로 만든 후 샤워를 해서 몸은 따뜻했을지 몰라도 옛날 집이라 외풍이 심해서 공기는 입김이 날 정도로 차가웠기 때문에 나는 씻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우리 집엔 뜨거운 물도 안 나오고 부엌에 있는 수돗가에서 물을 대충 껸져가며 씻어야 했기에 엄마는 가끔씩 나를 아파트에 살고 있는 큰 외삼촌댁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키곤 했었다.
하지만 큰 외삼촌댁에는 나보다 어린 사촌 동생이 둘이나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넓고 깨끗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동생들과 내가 은근히 비교가 되어 나는 그 집에 유독 가기가 싫었다. 엄마는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나를 큰 외삼촌댁에 데려가 묵은 때를 박박 밀어주면서 목욕을 같이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엄마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이상 큰 외삼촌댁에 목욕을 하러 가자고 안 하셨다. 엄마에게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너무 좋았다.
그 후로는 주말이 되면 엄마와 나는 대중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온탕에 들어가 때를 불리는 작업이 조금 힘들었다. 어둡고 깊은 탕 속에 앉아있으면 어린 마음에 한쪽에서 마치 상어가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무서워서 온탕에서 꼼짝없이 앉아만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좀 겁쟁이였다.) 그리고 내가 간지러움을 잘 타는 편이어서 때를 미는 시간이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때를 밀 때 잘 참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엄마는 집에 갈 때 흰 우유를 꼭 사주시곤 하셨다. 차가운 흰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면 목욕으로 달궈진 내 몸속이 시원해지면서 기분이 상쾌해져서 그다음에 목욕탕에 갈 때에도 꾹 참고 때를 잘 밀곤 했다.
가게방에 살면서 불편한 점들도 많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는 못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집에 지붕이 있었기에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질 수 있었다. 아빠가 흔들리는 내 이를 실로 꽁꽁 묶어서 빼주면 빠진 이를 손에 꼭 쥐고 아빠와 함께 가서 지붕 위에 던졌던 기억이 난다.
이를 지붕에 던지면서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눈을 꼭 감고 예쁘고 튼튼한 새 이가 잘 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살았던 가게방이 있었던 건물이 허물어지고 주차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건물이 생겨 피자와 치킨을 파는 가게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가게방에 사는 게 창피하고 싫었다. 하지만 그 건물을 허무는 날. 태어나서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약 13년가량 살았던 곳이어서인지 아니면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많았던 곳이어서인지 허물어져있는 벽돌과 흙더미를 바라보니 왠지 내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것 같아 조금 섭섭하고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