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5일.
우리 가족에게는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의미 있는 날이다.
부모님이 결혼하신 지 20년 만에 장만한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 날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결혼을 하고 부천~인천~오류동~쌍문동으로 이사를 총 8번 다니셨다. 어렵게 마련한 새 집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손이 없는 날로 이사날짜를 잡으셨다. 이사 가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내내 빨리 집에 가보고 싶어서 마음이 진정이 안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내 방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업 중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는 자꾸만 올라갔고 빨리 가보고 싶어서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드디어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100미터 달리기 시험을 볼 때보다도 더 빠르게 전속력으로 달려서 학교를 빠져나왔다. 엄마가 알려주신 새 집을 향해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본 건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떨리고 긴장되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아파트 추첨에서 우리 집을 6층으로 뽑은 일이 아버지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몇 번이나 칭찬하셨다.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은 그 당시의 로열층인 6층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기분 탓이었을까? 그날따라 1층에서 6층까지 올라가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 것 같았다. 드디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서 603호인 우리 집이 눈앞에 보였다.
이사 가기 전날.
엄마와 나는 리어카에 가게에서 보던 작은 브라운관 TV와 3단 서랍장만을 싣어서 새 집으로 날랐다. 가게방에서 쓰던 나머지 물건들은 너무 많이 낡아서 새 집으로 가져올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냉장고, 세탁기, 장롱, 침대, 식탁 등의 새로운 살림살이들이 이삿날 하루 종일 현관문턱을 통과해서 끊임없이 들어왔다.
엄마는 결혼 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번듯한 살림살이 하나를 장만하지 못했다. 신혼 때도 못 사본 가전제품과 가구들로 집안이 하나하나 채워질수록 엄마의 눈가는 촉촉해졌고 감격스러워 보였다.
집에 들어온 나를 발견한 엄마는 얼른 내 방문을 열어보라고 하셨다. 방 문을 열며 살짝 감았던 눈을 떠 보았다. 머릿속에선 러브하우스의 "따라다라 따~"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는데 내 방에 새 침대와 책상, 그리고 꿈에 그리던 피아노까지 놓여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전부터 중학생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가게방에 살 때에는 피아노를 살 형편이 안 돼서 스케치북에 피아노의 흰건반과 검은건반을 그려놓고 그 위에 손가락을 대고 입으로는 음정을 읊으며 피아노를 연습하곤 했다.
어느 날. 엄마가 멜로디언을 하나 사 주셨다. 그래서 입으로는 열심히 멜로디언 호스를 불면서 눈으로는 악보를 쫓아가며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이며 연습을 했다. 멜로디언은 피아노처럼 건반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종이 피아노에 비해서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소리도 나고 입으로 부는 재미도 있었다. 이사하는 날. 꿈꾸던 피아노가 방에 놓여있어서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삿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집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 살 집이지만 왠지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까지는 우리 집이라는 게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안방과 넓은 거실, 깨끗한 부엌과 오빠 방과 내 방. 이 모든 것이 마치 꿈인 것만 같았다. 그날 처음으로 생긴 내 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잘 때까지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가 않아서 볼을 몇 번이나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친구들을 집으로 한 번도 부르지 못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서 재미있게 놀다가 맛있는 간식도 먹고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에 나가서 노는 게 하루 일과였다.
세월이 흘러서 그 집은 올해로 27살이 되었다. 지금은 오빠네 가족이 엄마와 같이 그 집에서 살고 있다.
1994년도에는 눈부실 정도로 새 것 같았던 그 집도 어느새 리모델링이 필요할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내가 시집을 오기 전까지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곳곳에 묻어있는 집.
엄마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 거실 바닥에 누우시면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진다고 했다. 그 집은 엄마에게 단순히 사는 집이 아닌 엄마가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아닐까 싶다. 자식들이 결혼을 해서 하나, 둘 엄마의 곁을 떠나도 그 집만은 늘 30년 가까이 엄마의 곁을 지키며 묵묵히 엄마의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때론 따뜻하게 때론 시원하게 고된 몸을 녹여주는 친구 같은 집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