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1999년 11월 17일.
드디어 수능시험이 끝났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를 아주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2, 고3 기간 동안은 내 인생에서 후회 없이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공부에 올인했다. 다시 이러한 고 3 생활을 잘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능점수와는 관계없이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수능시험이 끝나면 꼭 어디론가 가족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 당시에도 야채장사를 하고 계셨기에 가게문을 오랫동안 닫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짧게 1박 2일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이 일 년 365일 야채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그 당시에 1박 2일 시간을 내서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목포까지 가서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목포에 도착해서 배편을 알아보니 배를 타고 가는 것보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비용도 더 저렴했고 비행기로 약 30분이면 제주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갑자기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우리 가족 모두 비행기를 처음 타봐서인지 아버지도, 엄마도, 나도 다 같이 긴장되고 떨렸다.
초등학생 때 비행기를 타본 친구가 비행기에 타면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하고 창문을 열면 구름을 만질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비행기에 타보니 신발을 벗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갈아 신을 수 있는 슬리퍼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창밖으로 구름을 만져본다는 말은 그 얘기를 들었을 때도 믿기지 않았지만 비행기를 타고서야 친구의 말이 장난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비행기 안은 매우 한산했다. 비행기가 뜨는 순간 기체가 많이 흔들렸고 기압 때문인지 귀가 멍해져서 나는 잔뜩 겁을 먹고 침을 계속 삼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이내 비행기는 안정적으로 목포 하늘을 날고 있었다. 30분 정도 지나면 제주도에 도착할 것이라고 기장님의 안내 방송을 했다.
잠시 후에 TV광고에서 보던 것처럼 얼굴이 예쁜 승무원들이 비행기 복도를 오가면서 음료수를 주었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좋아하는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달라고 했다. 좁은 복도에서 그것도 뜨거운 커피를 승무원이 따르다가 쏟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보고 있었는데 승무원은 능숙하게도 커피를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달라고 말했다. 주스를 다 마시고 한 잔 더 리필해서 마셨다. 하늘에서 마시는 오렌지 주스는 기분 탓인지 왠지 더 달고 맛있게 느껴졌다.
내가 비행기에 탄 유일한 미성년자 승객이어서인지 대한항공 로고가 새겨진 면가방을 승무원이 선물로 주었다. 비행기는 뜰 때와 마찬가지로 몹시 흔들리면서 제주도 공항에 도착했다. 제주도 공항에 내리자 여기가 진짜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겨울임에도 날씨가 포근했으며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는 야자수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관광지를 둘러볼 생각에 아버지는 마음이 바빠 보이셨다. 차가 없었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택시 한 대를 대절해서 택시기사분이 관광가이드처럼 우리 가족을 관광명소에 데려다주셨다.
제일 먼저 한라산에 가 보았다. 마음 같아선 한라산에 직접 오르고 싶었지만 한 겨울이었고 산에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웠기에 택시를 타고 오를 수 있을 만큼만 올라보았다. 한 겨울에 눈으로 덮인 한라산을 바라보니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에 담아 가고 싶었다.
제주도의 천지연 폭포한라산에서 내려와서 제주도에서 유명한 천지연 폭포와 정방 폭포를 구경하러 갔다. 아버지는 카메라 속에 우리 가족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싶으셨는지 연신 필름 카메라의 셔터 버튼을 누르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주로 사진 찍어 주셨고 아버지의 독사진은 내가 찍어드렸다. 하지만 내가 수전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진이 많이 흔들려서 아버지 얼굴이 흐릿하게 나오거나 내 손가락이 사진 모서리에 같이 나와있는 경우가 많아서 아버지가 잘 나온 사진이 거의 없어서 조금 미안했다.
추운 겨울이라 그다음에는 실내에 있는 여미지 식물원으로 향했다. 여미지 식물원 안은 예쁜 꽃들로 가득했으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꽃들이 많이 있어서 마치 외국에 나와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여미지 식물원을 나오자 어느새 밤이 내려앉아서 서둘러 숙소로 가서 여행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숙소 근처에 있는 귤 농장에 방문했다.
일인당 얼마의 이용요금을 내면 한 시간 동안 농장에 있는 귤을 마음껏 따 먹을 수 있었다. 입장료가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조금은 비싸다고 생각했었기에 어린 마음에 귤을 최대한 많이 따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귤나무에서 귤을 따면 까먹고 따면 까먹고 배가 터질 때까지 계속해서 귤을 먹었다. 배가 불러서 더 이상은 못 먹겠다 싶어 아쉬운 순간. 한 시간이 지나갔고 귤 농장을 하시는 사장님 부부가 숙소에 가서 먹으라며 귤을 한 아름 담아 주셨다. 한 봉지 가득 주실 줄 알았다면 귤을 적당히 먹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고 나서 돌고래 쇼를 볼 수 있는 로얄 마린파크에 갔다. (지금은 퍼시픽 랜드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1999년도만 하더라도 로얄 마린파크였다.) 돌고래와 물개가 사육사들과 호흡이 척척 맞는 것을 보고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물들이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많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이 절반만 즐거웠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제주도 갈치가 유명하다길래 갈치를 사러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재래시장은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매우 북적였다. 이 가게 저 가게 한참을 눈으로 구경을 하다가 통통하게 살이 잘 오르고 은빛 옷이 반짝거려 매우 신선해 보였던 갈치들을 골라서 포장을 해서 시장을 빠져나왔다. 제주도 공항에 도착해서 갈치를 화물 배송으로 부치고 우리 가족은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처음에 비행기를 탔을 때보다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비행기 안은 승객들로 가득 찼다. 평소에 여행을 다니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으시다니. 놀랐다. 부모님이 장사를 하시다 보니 제주도는커녕 여름휴가조차 제대로 갔던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부모님은 인생을 그들만의 속도로 늘 바쁘게 살아오셨다. 그날은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박 2일 동안의 짧았던 여행이어서인지 제주도를 다녀온 게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인화한 필름 사진들과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아침 밥상에 올라왔던 통통하고 짭조름한 갈치를 보고 나서야 꿈이 아닌 걸 실감했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가 대학생이 되면 가족여행을 좀 더 많이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제주도 여행이 우리 가족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