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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옴느 Sep 26. 2023

어미 새가 떠난 후, 그 생존법은

일의 가치는 내가 설정한 '의미'로부터

분명 즐거웠는데,

분명 그 시너지가 엄청났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프로젝트 진행이 예전 같지 않다. 혼자인 기분이 든다.



.

처음에는 불평이었다. 아니, 이렇게까지 관심이 없다고?

관심이라기보다, 이렇게 프로젝트 진행에 관여를 안 한다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모두가 신경을 안 쓰는, 그런 알쏭달쏭 한 상황.


두 번째는 현실에 대한 인지였다. 어미 새는 떠났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몇 달 전 Phase 1을 마치고 Phase 2를 재개했다.

든든했던 시니어 3분은 지금도 함께 계신다. 다만, 그때 그 든든함은 어쩐지 사라진 것 같았다.

못내 불평이 생겼지만, 이내 깨달았다. 한 바퀴 열심히 받아먹으며 굴렀으니, 이제 혼자 구를 차례라고.

"이제 언제 뭘 해야 할지 알잖아? 열심히 알려줬지, 그치?"라고 소리 내지 않고 나에게 이야기하시는 듯하다.

충격적이지만, 인지해서 다행이다.



그래서 세 번째, 구르고 있다.

인지하기까지 스케줄은 질질 미뤄졌고, 인지하고 나서 기능이 다 정립되었다 착각을 하고 다음 절차를 밟는다.

발표를 하고 나서야 아닌 걸 알고 다시 되돌아가 다잡아가느라 또 스케줄은 미뤄진다.


프로젝트 매니징에 일정 준수는 금인데, 고객도 없고 대표님의 관심 밖, 그래서 자유롭다는 장점을 지닌 내 프로젝트는, 하염없이 미뤄진다.

한창 성장하고 싶은 주니어인 나에게도 시간은 금인데 말이지.

오히려 조급한 마음에 혼자 스케줄을 무리하게 잡고, 시행착오를 겪느라 더 미뤄지는 듯하다.


문득 쓰면서 느껴진다.

자유로운 압박 없는 프로젝트에 은근한 불만이 있었는데,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주니어인 나에게 현실적인 스케줄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쌓을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

어미 새가 떠나면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다.


1. 참여율이 낮아진 것 같다.

2. 맡은 일이 회사에서 의미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사실 둘 다 아니다.


시니어 분들은 애초에 맡은 일, 지도의 일을 끝낸 것이다. 그들이 실무의 일까지 책임져 줄 일은 없다.

그분들의 참여율이 예전보다 적어진 것 같다면, 그만큼 나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믿고 맡기는 것이겠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오히려 예전과 같이 나와 함께 머리를 맞대 함께 티키타카 의견을 주고받으며 일을 진행할 실무자의 부재이다.


맡은 일이 고객이 없다 하여 의미 없지 않다.

다른 업체의 수주를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우리 회사가, 자체 수익을 지닐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것이다.

고객과 마감 기한에 급급한 다른 프로젝트들에, 맡은 프로젝트의 순위가 밀려난다고 해서, 그 가치까지 밀려나는 것은 아니다.

그걸 잊지 말라고, 잃지 말라고, PO(Project Owner)가 존재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잘 할 수 있으리라 믿고, 나에게 배정해 주신 것이겠지.



.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최인철 저의 『굿 라이프』.

인생의 가치를 행복으로 두는 만큼, 퍽 재밌게 읽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만큼 결론을 내자면, 의미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

의미는 내가 설정하면 되지.


글을 남기기 전까지만 해도, 요즘의 회사 생활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점점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회사에도, 나에게도.

하지만 의미는 내가 설정하기 마련.



그래서 어미 새가 떠난 지금, 나의 생존법은 '의미 재설정하기'.

맡고 싶었던 PO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더냐. 운이 좋아 어미 새도 있었지.


처음 계획한 대로, 이 프로젝트로 회사의 수익구조에 보탬이 되자.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현실적인 일정을 짜는 법도, 필요한 인력을 찾아 나서는 법도, 모두가 지칠 때 끈질기게 끝까지 가는 법도 배울 것이다.


그렇게 회사에도, 나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지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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