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마이 러브
시간표를 찾다 보니 처음 가보는 영화관이었다. 저녁 시간대. 귀여운 20대 커플이 둘이나 있다. 둘 다 꽤 영화를 좋아하는 커플이거나, 아니면 그냥 시간에 맞춰 입장했겠지. 괜찮겠어 너희들...? 린 램지인데...? 역시나 퇴장길에는 투덜거리는 대화가 들린다.
그들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지만 나 또한 불만족이었다. 각본, 미장센, 편집을 총합하여 주제를 연출해 내는 능력,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의 공들인 연기. 좋은 영화인데, 만족스럽진 않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도 왜일까를 계속 생각한다.
'다이 마이 러브'는 산후 우울 장애로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인물 '그레이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실 세계와 의식 세계를 구분선 없이 병치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그레이스 내면의 비중이 높아진다. 초반엔 잠깐씩 혼란을 유발하지만, 갈수록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주제에 집중하기 위한 효용성 있는 연출이다.
별과 그레이스
강렬한 장면이 많은 영화인데, 이상하게 차가운 장면이 남는다. 별을 보던 잭슨과 그레이스가 나누는 대화다. 잭슨은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어 좋다고 한다. 그레이스는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 싫다고 한다. 성적 도발이 거절당한 후의 대화라 퉁명스러운 반응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난 이게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우주를 생각하면 시련이 작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우주에 비해 티끌보다 작은 나인 것도 사실이다. 두 인물의 차이를 대비하는 동시에 '내가 없어지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 그레이스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나와 장전된 총
아, 앞선 장면이 왜 남아있는지 깨달았다. '의식적 파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 때문이다. 비상금을 신발 깔창 밑에 깔고 다니기 시작한 시절, 어머니는 매일 같이 강조하셨다. 이 천 원은 정말 소중한 거니까, 잘 간직해야 한다.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나쁜 형들이 물어보면 돈이 없다고 해라. 다섯 식구 살림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 말씀을 하실 때만큼은 항상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셨다. 그냥 물건이랑 바꾸는 용도 아닌가. 대체 뭐라고 그때만은 꼭 나에게 집중할까. 질투일 수도 호승심일 수도. 그냥 모르겠다. 조금 먼저 나가 어머니를 기다리던 나는 장전된 총만큼 무거운 천 원짜리를 꺼내 쏴버렸다. 먼지 나게 맞을 각오를 하고 당당하게 양손에 반쪽 지폐를 쥐고 있었다.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깜짝 놀라시며 나의 등교도 본인의 외출도 미루고 집으로 돌아가 테이프로 붙이셨다. 하교 후에는 나를 데리고 은행에 가 멀쩡한 돈으로 바꾸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전혀 혼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돈이란 나와 비교가 성립되지 않는, 말하자면 공기 같은 것이었다.
장전된 총과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잭슨이 데려온 개를 쏜다. 아무리 짖어도 버리거나 죽이지 않았던 그레이스가 한밤중에 펨의 총을 훔쳐 와 개를 쏜 건,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잭슨은 개의 상처를 알고도 내일로 미뤘고, 개는 밤새 낑낑거렸다. 펨이 끌어안고 자던 그 총은 항상 장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총구는 언제든 자신을 향할 수도 있다.
어린 나와 달리 그레이스는 자신을 향했고, 영화는 그렇게 마지막 국면에 이른다. 짙은 경험이 있거나 감각으로 먼저 받아들이는 관객에겐 잘 전달될 영화다. 하지만 나처럼 이성을 앞세우는 사람에겐 직관적이지 않다. 한적한 시골, 작가인 그레이스, 우울 장애에 무감각한 주변인들, 시어머니를 통해 전달되는 총. 이런 설정들이 산후 우울 장애라는 틀을 향해 정렬한 느낌이다.
우주 앞에 작아지는 그레이스부터 방아쇠를 당기는 그레이스까지. 감독이 가진 자기 파괴에 대한 이해가 고스란히 담긴 영화라 더 아쉽다. 어떤 관객은 저런 그레이스라서, 저런 환경이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팸도, 그레이스도, 어린 나도. 지금의 나도. 누구나 마음의 심연에 장전된 총을 지니고 있다. 삶이 전복될 때, 이것은 어김없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조금만 보편적으로 다가와 주는 영화였다면 나는 아마 매우 만족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