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트
지금의 채널 ENA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드라마가 있었다. 사회 고발적 사건을 다루는 국내 법정물이 처음이라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쁜 이는 벌 받고, 착한 이는 구원받는 세계. 많은 이의 바람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량하다고 믿고,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권선징악은 진리도 명제도 아니다. 법의 기능은 합법과 위법을 판단하여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일 뿐, 정의와 불의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법정과 정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권선징악은 어디에 있는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부터 정의해야 합니다." 고민해 본다.
시라트는 선을 다시 쓰려는 시도다.
시라트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등장인물 모두가 크나큰 불행을 겪은 뒤 수습하지 않은 채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불행을 극복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려 했다면 극복과 그 이후의 드라마가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니다. 불행과 고통을 고찰하고 싶었다면 그 감정과 고뇌에 대해 힘을 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니다. 권선징악을 말하고 싶었다면 악인이 불행해지고 선인은 행복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니다. 인물들은 모두 충분히 착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가족을 사랑하고 처음 본 낯선 이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서로의 고난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가진다. 그리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여 나아간다. 관객 중 아무도 악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이들에게 닥친 불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파티를 망치는 불청객의 성격과 라디오 뉴스의 내용에 전혀 관심이 없을 정도로 세상을 도외시한다. 모로코의 사막을 누비는 이들이 그곳의 역사와 지리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의 사정, 나의 가치, 나의 자유가 우선이다. 시비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판단과 행동의 범위가 개인의 영역으로 작았을 뿐이다. 이것이 이들이 벌 받는 이유고, 여기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정말 급진적인 주장이다. 나도 대상이다. 내게 닿는 뉴스를 소비할 뿐, 내가 사는 사회와 세계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특별히 하지 않는다. 내 참정권과 투표의 의미를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세계정세는 고사하고 국내 정치에도 큰 관심이 없었던 세월이 길다. 솔직히 내 생계와 내 미래를 밝게 그리기도 버겁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나처럼 작은 사람이 관심을 가진다고, 무엇을 한다고 바뀔까?'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는 사이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가 외면한 사이 세상 곳곳에는 지뢰가 묻혀버렸고,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을 것이다. 내가 악해서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어딜 향해 가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다. 그리고 이유 없이 살아남더라도, 그것은 단지 운일 것이다.
많은 선대 인류가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도리를 설파했다. 그것을 종교라 하든, 철학이라고 부르든 이념으로 명명하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비극에서 멀어지게 하고자 하는 지향점은 기본적으로 같을 것이다. 응당하다. 공생을 전제하면,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옳다. 단지 단위가 달라졌다. 이미 천천히 절멸하는 중에도 인류의 잔여 생산 대부분은 미지의 생산성을 개발하는 데 쓰이고 있다. 거의 즉각적 공멸을 확정하는 딸깍 장치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군비는 고도화된다. 자신을 상대로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현대 인류에게, 어떤 기본 방침을 선이라 제시해야 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기존의 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리고 어쩌면 개인의 존엄보다도 선결적인 문제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시라트이다.
와... 이래도 되는 겁니까 감독님? 머리가 너무 아프거든요.
하... 알겠어요. 뭐라도 해보겠습니다.
아 근데 제발 부탁이니까 이런 얘기 아니었다고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