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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Jan 16. 2023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

나는 뼛속까지 홀로 선 인간이다.

가족도 친구도 결국은 타인이라는 이념 하에 나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믿으며  타인을 의지하는 것을 최대한 기피하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아예 타인과 담을 쌓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받으면 그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심리가 강한 나는 받는 것도 주는 것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그 누구의 표현의 그대로 빌려 참으로 ‘정 없는 사람’이었다. 그 누가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기라도 하면 오지랖이라는 불쾌한 감정이 먼저 들어와 나는 오히려 정이 많은 사람이 불편하고 짜증 나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사고를 당하고, 다치게 되고 정작 내 곁을 지켜준 것은 그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게 되며 이제는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사랑도 받아 봐야 주는 법을 안다고 하는 말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지금의 나이다.


다가오는 관심과 사랑도 거부하며 살아온 길고양이 같은 나에게 사람 좋고 정 많은 남자친구가 생기며 내 인생도 많은 부분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가 좋은 것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은 차치해 두고 오늘은 내가 쌓아 올린 단단한 성곽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는 그 과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참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언젠가를 위해서.


나와 남자친구는 정서나 취향적인 측면에서는 닮은 부분이 많은 듯하지만 뜯어 놓고 보면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 활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성적인 나와 겉으로는 내성적이게 보이지만 누구보다 활발한 남자친구는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우리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그런 우리의 이야기가 6개월가량 이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내가 우리 둘 사이에서 무엇보다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점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것은 바로 '시점의 차이'이다.


나는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현재라는 시간은 조금 덜 먹고 덜 입더라도,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아끼고 희생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살아왔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도전해 왔지만 아직도 나는 시간이며 돈이며 에너지를 미래를 위해 아끼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다.


반대로, 남자친구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그는 현재, '지금 당장'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에너지, 시간, 돈에 아낌이 없다. 그저 지금 당장 본인에게 가장 필요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미래를 크게 고민하지 않기에 현재의 상황만을 고려하여 결정을 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나는 처음에 그 모습을 보며 좋게 느낀 부분도 있었다. 

나는 현재를 즐기는 것을 잘 못하다 보니 무엇이든 하고자 하거나 먹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고민 없이 턱턱 지르는(?) 듯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자 계획적이지 않고 즉흥적인 그런 모습들이 계획성이 없게 느껴지고 미래에 대한 준비성이 없는 듯하게 느껴져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높이 두고 살아온 나에게 현재를 즐기고 사는 삶이 장기화될수록 즐겁기보다는 고문이자 고통이었다. 이런 삶은 나에겐 즐거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신념을 거역하며 살아가는 고통의 삶인 것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기에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남자친구를 만나면 알 수 없는 중압감과 불편함이 계속되어 ‘내가 얘를 싫어하나?’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렇다고 보기 싫고 만나면 기분이 나쁘고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이 감정이 무엇일까 무려 한 달가량을 고민해 왔다. 이제야 그 답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그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고, 나는 미래를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로의 삶이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와 나를 이해를 하고 나자 불편하게만 비치던 그의 삶이 방식이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무턱대고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줄 알았던 그는 현재 충분히 그럴만한 마음과 능력이 있기에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었으며, 당장 누군가를, 무언가를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그 언젠가를 기약하며 선택을 유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를 사는 나는, 현재의 내가 충분한 능력이 있어도 혹시나 이러다 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사고라도 당한다면? 회사에서 잘린다면? 

하는 쓸데없는 질문들로 수많은 일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 왔다.

현재의 내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들에 대해서도 ‘미래의 나는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잖아!’라는 생각을 해오던 나는 결국 내가 할 수 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없다’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들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미래에 정말 걱정한 대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과연 그때의 나는 과거에 그럼에도 저질렀던 일들을 후회하게 될까 아니면 그때 저지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까,

나는 미래의 내가 잘못될 것을 마치 예측이라도 하듯이 왜 매일을 불안함에 쌓여 중요한 선택들은 유보한 채로 행복을 뒤로 미루며 살고만 있을까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이 결국 나에게 딱 맞은 정답을 향한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현재 내가 달리는 길을 뚝심 있게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의 남자친구는 지금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알고 달리는 자동차 같다.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가기에 늘 그렇게 해맑게 평온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친구는 내가 배워야 할 점을 참 많이 가진 사람이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좋은 짝을 만난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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