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씨앗 뿌리기 -제1화-

과연 어디에서 가장 예쁜 열매가 맺어질까?

by omoiyaru

나는 '돈'에 관심이 많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많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의 부재였다.

어려서는 여유롭지 않은 환경 속에서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꿈과 희망은 어려운 형편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안 좋은 성향처럼 비쳤다. 그래서 나는 나의 갈망들을 그저 묵살시키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원하는 것들을 마음껏 펼쳐내지 못하는 나에게 세상은 가혹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만 가득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내 꿈을 짓밟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다이내믹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하고 싶은 것이 많던 나의 존재는 돈이 부족한 부모님에게 마치 짐짝과도 같은 존재였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더욱 갈망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부모님은 나를 가르치지 않으려 애쓰셨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마음'이 아닌 '돈'이 없어서 딸아이를 가두어야만 했던 부모님의 심정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프기 짝이 없다.


그런 내가 20살이 된 시점에서부터는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돈'을 버는 일에 매진했다. 공부보다도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했었다.

나는 연애를 포기했었다. 공부나 돈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평일도 주말도 없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의 나의 꿈은 주말에 쉴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당시 주말에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외식을 하러 나오는 여유로운 가족들의 모습이 그렇게나 부러웠었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을 보며 나도 저런 부모의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나는 주말을 보장받는 직장인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주말을 보장받는 직장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막연하지만, 내가 잘하는 분야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내가 선택한 대학교의 학과는 어문계열이었다. 외국어를 전공으로 하고 있었다 보니 언어를 잘하면

어디든 취업을 하겠지 라는 담대한 마음도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나는 대학교 진학과 동시에 돈을 버는 것에 눈이 팔려 학점관리를 소홀하고 있었으며,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알파벳을 아는 정도였다.

우리 학과는 언어특기생으로 들어온 동기들도 있었으므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한 일이었다. 1년을 아르바이트에만 매진했다 보니 동기들과 비교해서 1년이나 뒤쳐진 나에게 탄탄한 직장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법은 만무했다.


그래서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내가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과 1년 동안 학교 공부에 매진해 학점을 잘 받고 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때의 차이를. 장학금은 당장 들어오는 수익이 아니라서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2학기 치를 다하면 600만원이 넘고 당시 어학자격증을 따면 거기에 추가적인 장학금으로 급수에 따라 2, 3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어 매달 2,30 만원씩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어들이는 돈이 당장은 많아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소홀해진 학점관리로 인해 손해 보는 등록금 1년 치 -600만원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이때 깨달았다.


나는 공중에 등록금 600만원을 날려버린 것이다.

(추후 졸업 시 계절학기까지 추가하게 된다면 손해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 나는 거의 매일같이 하던 아르바이트를 최소한인 주말 2일로 줄이고 생계가 유지가능한 조건을 만든 이후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공부에 올인했다. 반년 동안 올인한 결과 어느 정도의 실력향상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미 상위권을 달리는 동기들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의 선택을 한다.

바로 남들과 다르게 2학기를 기점으로 1년간 휴학을 하는 것.

뛰어난 동기들을 당장 이길 수 없다면 피해 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미 과탑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들을 이기진 못할 것 같고, 반학기 뒤쳐진 선후배들과의 싸움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나를 부모님을 포함한 절친들도 의아하게 보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예상은 적중했고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었다.


휴학기간 동안 나머지 수업을 진행하는 것처럼 별도로 학원을 다니며 하루에 10시간 넘게 씩 3달 정도 자격증 공부에 매진한 결과 원하던 등급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공부에 맛을 알게 된 나는 복학 후 과탑도 2번이나 하였고 그런 결과들로 인하여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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