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씨앗 뿌리기 -제2화-

과연 어디에서 가장 예쁜 열매가 맺어질까?

by omoiyaru

지난 이야기에 이어, 나는 1년간 교환학생으로 해외에서 살면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과 사람들을 만났고, 그동안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나의 설움을 모두 해소하는 과정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응원과 지지, 그리고 사랑을 받으며 마치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다. 운이 좋게도 남들은 인생에 1,2번 겪기도 힘든 일들을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 번이나 경험하기도 했고 그때 맺어진 인연들의 끈은 그 이후 4,5년 동안이나 이어져 나를 계속해서 이길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1년 동안의 해외생활은 나의 어학실력도 획기적으로 도약시켜 주는 경험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앉아서 공부하는 절대적인 양은 많이 줄었었지만, 실제로 일본인들과 소통하고 수업을 듣는 과정 속에서 몸으로 익히게 된 어학실력은 지금까지도 나를 먹여 살리는 자산이 되었다.


이런 경험이 나의 첫 번째 재테크 성공기의 초석이 되었다.


우선 내가 몸담은 분야에서 나의 몸값은 높이는 일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관련 업계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일 그리고 해외생활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던 블로그 활동까지. 20대에 투자했던 나의 3가지 재테크는 그 당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미래에 돈이 될 수 있는 자산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자산을 차곡차곡 모아가고 있었다.


첫 번째 재테크가 성공하게 된 계기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동안은 돈을 써가며 투자만 해왔다면, 그 투자가 빛을 발해 '돈'으로 돌아오게 된 사건이었다.

그전에도 내가 배운 언어와 활동들 덕분에 과외 알바와 통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전보다 높은 시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던 나는, 그 지식을 살려 취업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라는 무기 하나만으로는 취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고, 취업을 하더라도 연봉 3,000만 원 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나를 깎아내리던 교내 취업 컨설턴트의 말을 사뿐히 무시하고 보란 듯이 내가 내 발로 뛰어다니며 취업처를 찾아 연봉 3,000만 원 이상은 무조건 받아내겠다는 목표를 스스로 일궈냈기에 그 당시 더욱 뿌듯했었다.


하지만, 당연히 얻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있는 법.

그 당시 나는 당장 거주지를 떠나 타지의 논밭 속에 위치한 공장에서 근무를 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내야 했지만 그래도 높은 연봉으로 시작하여 경력을 쌓는 것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더욱 중요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이때에도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강행했었다.

거주지 부분이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직무의 경우 내가 원하던 언어를 활용할 수 있는 통번역 업무가 주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업무상 해외출장도 여러 번 다녀왔고 회사 지원으로 통번역 교육도 받아볼 수 있었으니 엄청난 혜택이었고, 이후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도 회사의 규모와 네임벨류로 가점을 받았으니 나에게는 값진 경험이었다.


하지만 때는 20대 중반, 하고 싶은 것이 많던 나는 매주 주말 수도권에 위치한 본가를 한주도 빠짐없이 올라왔을 만큼 시골생활에 어려움을 느꼈다. 당시에는 운전을 할 수 없어서 대중교통으로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했었는데 오랜 시간 지속되다 보니 체력도 안 좋아지고, 정신적으로도 문제를 겪게 되어 결국 2년가량을 버티다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때에는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처방받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내가 가슴에 새기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든 곳에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만둘 것' 몸이 이미 망가지고 난 뒤에는 그것을 정상화시키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참고로 나는 정신이 망가진 후 회복하는데 무려 10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이 또한 나에게 명확한 한계의 기준점을 만들어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내가 첫 회사가 힘들었음에도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투자금에 대한 회수에 대한 생각이 가장 컸다. 대학 등록금으로 사용한 돈 즉 내가 전공을 배우는데 투자한 돈을 그 전공을 살려서 무조건 벌겠다고 처음 입사할 때부터 결심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다 벌고도 남을 만큼 번 이후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퇴사를 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봉착한 난관은 또 다른 투자처를 찾는 것이었다.


일단 망가진 몸과 마음이 회복해 나가자 나는 평소 관심이 있던 포토샵, 일러스트 분야를 국비지원으로 배웠다. 모아놓았던 돈으로 무작정 유럽여행도 다녀왔었다. 남들이 해보는 건 다 하려고 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블로그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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