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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Mar 16. 2023

MZ세대 그리고 나에 대한 고찰

요즘 MZ세대라고 칭해지는 젊은이들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 또한 태어난 년도로 봤을 때 MZ세대의 앞글자인 M세대에 속하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MZ세대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완전하게 Z세대를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MZ세대의 특징 혹은 가치관은 '희생당하지 않는 자신의 삶' 그 자체에 포커스가 많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과거 부모님 세대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졌던 '희생'이라는 개념이 퇴색되어 가고 그 속에서 희생당하던 부모님들을 보면서 자식세대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다짐한 것 같다. 자신의 삶은 온전히 나만을 위해 누리겠다는 심리가 팽배해진 요즘 시대에서는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것이 바보 같은 일처럼 비치고 있는 것도 있다. 경쟁이 더 팽배해진 요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탑재(?)하게 된 성격일지도 모른다.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예전처럼 다 같이, 함께보다는 나 홀로, 빠르게 가는 게 더 유리하고 확실한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부터 외국문화를 빠르게 접한 영향인지 한국 특유의 공동체, 조직문화를 싫어하였고 개인주의적은 시선으로 삶을 살아왔다. 타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나를 위해서만 사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동양사상에서 내려오는 것들에 의문을 품은 적이 많았다. 부모니까 당연하게 자식은 부모를 섬겨야 한다거나 선생님이니까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거나 그런 생각들이 잘 와닿지 않았었다. 물론 그렇게 모범이 되는 어른들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전혀 존중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단순히 나이가 많다거나 직업이 어떻다는 이유로 나는 존중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내 생활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지지를 받고 제대로 된 관계를 맺었다면 조금은 단체생활이나 조직생활에 적응을 잘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어느 정도 독립적인 성격을 타고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처럼 대학생활을 하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린 시절 하고 싶었던 취미활동들을 하고 가보고 싶었던 해외여행을 하고, 자동차를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돈을 쓰면서 어린 시절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나에게 많은 것들을 해주며 스스로를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거의 10여 년 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만 집중하는 이런 삶이 주는 행복감이 생각보다 오래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전부인 삶에서는 느낄 수 있는 인생 최대의 충만한 행복감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감탄을 하거나 박장대소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현저히 적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런 것인지, 내가 가진 지금의 안정감과 행복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점차 공허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부모이든 자식이든 연인이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각오를 갖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장에는 손해는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들을 저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큰 목적이자 의미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인 시절의 나는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면서 매우 바쁘게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참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정적이 발생하거나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불현듯 내 주위엔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파도와 같이 밀려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해야 할 일들을 늘려 나가곤 했다.


추억할 것들이 없는 삶이라는 건 어찌 보면 메마른 땅과 비슷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이룬 것들은 많을 수 있지만, 그렇게 갖게 된 것들이 사막 한복판에 덩그러니 있다고 한다면 결국은 누구에게도 필요로 되지 않으며, 쓸모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와 무엇과 함께 했던 기억들 또는 추억할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풍성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내가 우울해진 나를 웃길 수는 없지만,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을 보며 웃을 수는 있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웃을 수 있다. 내가 나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할 수 없는 영역들을 주위의 누군가들이 채워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무너져 내린 순간에 내가 나를 포기하고 싶다고 느끼거나 내가 나를 소홀히 대하고 싶어질 때에도 누군가가 손을 뻗어준다면 쓰다듬어 준다면 우리는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고 혼자에게만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낸다는 것 또한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에 동반되는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MZ세대들은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우리의 부모님 세대 덕분에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N포세대라는 말처럼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 나와 같은 MZ세대가 더 많아진다면 희생하는 부모가 없듯이 그 희생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 어린아이들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이미지를 제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희생이 부정적인 단어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좋은 예시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공유하고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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